> 칼럼 > Culture&Life
[와인 여행]미맹(味盲) 변호사의 와인도전기
윤경 변호사  |  yk@theleadlaw.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743호] 승인 2019.06.24  09:52:01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난 선천적으로 맛에 다소 둔감한 편이다. 와인을 좋아하지만, 비싼 와인과 값싼 와인 맛을 구별하지 못한다. 상한 우유인데도 불구하고 치즈맛 나는 우유인줄 알고 벌컥벌컥 들이킨 적도 많다. 와인은 주로 마트에서 산다. 가격에 따라 잘 정리되어 있어, 선택에 어려움이 없다.

와인을 사는 것보다 더 괴로운 일은 고급 레스토랑에서 와인을 주문하는 일이다. 난 소믈리에(sommelier)에게 절대 와인을 추천해달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봉이라는 것을 감지한 그들은 이상야릇한 와인을 권한다. 가격이 너무 비싸다고 하면 그들은 항상 이렇게 반박한다. “이 와인은 비싸지 않아요. 손님의 취향이 비쌀 뿐! 고상한 취향의 고객에게만 권하는 와인입니다.” 내 취향이 ‘싸구려’라고 어떻게 내 입으로 말한단 말인가. 그저 값비싼 취향을 인정하고 주문할 수밖에.

그래서 나는 이렇게 대응한다. 주로 중간가격대의 와인을 고른다. 발음하기 어려운 이태리어나 프랑스 단어를 말해야 하는 결정적인 순간이 오면 기침을 핑계 삼아 냅킨을 입으로 가져 간다. 노련한 소믈리에라면 고객의 발음 따위에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단지 고객의 손가락이 메뉴판의 어디를 가리키는지 주시할 뿐이다. 테이스팅을 권하는 소믈리에로 하여금 나를 존경하게 만드는 방법을 터득했다. 한 모금 마신 후 아주 단호하게 말한다. “내 생각에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는 것 같은데…?” 그러면 그들은 알아서 눈치 챈다. “탁월한 선택이십니다”라거나 “죄송합니다. 다른 것으로 다시 올리겠습니다”라고 둘 중의 하나를 말하게 되어 있다.

그다음 풀어야 할 어려운 숙제는 맞은 편에 앉은 상대방에게 와인에 대한 자신감을 보이는 것이다. 와인의 끝향이라든가 바디감 등을 구분하는 수준에 이르는 것은 난이도가 높다.

그래도 방법은 있다. 가장 중요한 규칙은 질문하는 사람이 우위에 선다는 사실이다. 절대 의견을 말하지 말고 대신 항상 반문을 하라. 만약 단 한번이라도 “우와, 이거 완전 시뻘겋구먼!”과 같은 수준 이하의 발언을 내뱉게 되면 끝장이다. “이 오묘한 빛깔을 보니 비 내리는 늦여름 숲 속에 물방울을 머금은 루비빛 산딸기가 연상되는군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세요?”라고 우아하게 말하는 것이다. 그러면 어떤 상대든 진땀을 흘리게 된다.

어떤 상황에서라도 줄줄 나올 만한 몇 가지 문장을 반드시 외워 두어야 한다. 잊지 말아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멘트를 끝내고 난 후 시선을 허공에 두는 것이다. 의미가 가득 담긴 듯한 얼굴로 뜸을 들여라. 상대방은 의자 속에 몸을 깊숙이 파묻은 채 이렇게 생각한다.

“제기랄! 이 분은 아직도 감이 있군. 난 벌써 그 감을 느낀 지 까마득한데 말이야.” 그러면 승리다.

/윤경 변호사

더리드 공동법률사무소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최근인기기사
1
[국회 법률안에 대한 변협 의견]“세종시 법원 신설, 인구수만으로 판단해선 안 돼”
2
조국 전 민정수석, 9일 법무부장관 지명
3
[제네바통신]한국인의 DNA와 글로벌 혁신지수
4
“국제인권조약, 재판에 적극 원용해야”
5
[회원동정]한상혁 변호사,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지명
Copyright © 2019 대한변협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news.koreanbar.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