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9월 북경에서 개최된 제4차 세계여성회의에서 공식화된 ‘젠더(gender)’라는 용어는 사회적으로 기대되는 성역할을 의미한다. 우리말로는 생물학적 성 구분을 의미하는 ‘sex’와 유사하게 ‘성’으로 번역되는 ‘젠더’는 남녀의 사회적 역할 구분에 대한 인지를 바탕으로 양성의 동등함 실현 목표를 내포한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젠더’가 용어로서 공식화된 지 약 25년이 다 돼가는 오늘날 유엔 국제회의에서 젠더 논의는 일상화됐으며, 분야도 다양화세분화됐다. 그러나 가장 최근까지도 여성의 배제 또는 저조한 참여가 가장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던 분야가 바로 대량파괴무기(WMD) 정책, 군비통제를 다루는 군축·비확산 영역이다.

2000년 10월 안보리는 분쟁 방지와 해결, 평화협상, 분쟁 후 재건 과정에서의 여성의 역할을 재확인하고, 동등한 참여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결의 1325호를 채택했고, 2001년부터 유엔군축실(UNODA)은 젠더 관점의 주류화(mainstreaming gender perspective)를 통해 군축 젠더 측면을 대내외적으로 부각시키며, 양성의 동등한 참여 확보 노력을 기울여 왔다. 여기에 캐나다, 아일랜드, 나미비아, 유엔군축연구소(UNIDIR) 등 일부 국가와 기관의 적극적인 논의 주도와 아웃리치도 병행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이제 국제 군축·비확산 분야에서 젠더 논의는 하나의 필수 요소로 자리 잡게 됐으며, 특히 2018년에는 다양한 이니셔티브와 진전을 볼 수 있었다. 우선 2018년 5월 발표된 구테헤스 유엔 사무총장의 군축 어젠다(‘Securing our Common Future’)는 “동등하고, 완전하고, 효율적인 여성의 참여”를 포함하고 있으며, 6월 채택된 제3차 유엔소형무기행동계획(UNPoA) 보고서는 성기반 폭력과 소형무기가 성별로 미치는 영향을 언급하고 있다. 10월에 군축 및 국제안보를 논의하는 유엔총회 1위원회에서 채택된 결의의 25%에 상당하는 17개 결의가 젠더 문제를 언급했다. 무기거래조약(ATT)은 젠더 이슈와 성기반 범죄를 제5차 당사국회의의 주요 주제로 정하고 집중적인 논의를 진행 중이다.

젠더 문제를 다루는 모든 결의나 문서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내용은 여성 참여 확대와 의사 결정과정에서 여성 대표성 확보를 위한 동등한 기회 증진이다. 여러 괄목할 만한 진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다자군축회의의 대표단 중 여성의 비율은 1/4 수준에 그치고 있으며, 여성 대표를 하나도 포함하지 않은 대표단은 절반에 가깝다. 회의 참여 및 발언자 성비에 관한 통계는 기본이며, 더 근본적으로 여성 전문가 육성도 필요하다. 또한 무력 분쟁과 무기 통제가 성별에 따라 미치는 영향에 대한 면밀한 연구와 대책마련도 수반돼야 한다.

무엇보다도 되새겨 나가야 할 것은 군축·비확산 분야에서의 양성 평등 실현 노력이 궁극적으로 더욱 효과적이고 더욱 나은 국제안보 정책을 위해 필수적이라는 인식을 공고히 해 나갈 것이다. 힘의 우월성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닌 다양한 목소리를 경청하면서 실존적 위협에 대해 공감하고, 누구의 안보도 저해하지 않는 실질적 조치를 모색하는 것이 국제 군축·비확산 논의의 기초라고 한다면, 여기에서 젠더 요소의 중요성은 훨씬 잘 드러날 수 있을 것이다.

 

 

/명은지 주제네바대표부 1등서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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