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미국에서 ‘경제성장, 규제완화,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이 통과됐다. 해당 법안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도드-프랭크법’이라는 금융규제 장벽을 무너트린 것으로 평가된다. 법안 통과로 자산 100억 달러 미만 지방은행은 자기자본 투자를 제한하는 ‘볼커 룰’이 면제됐고, 강화된 감독규정이 적용되는 은행의 자산 규모도 500억 달러에서 2500억 달러로 상향됐다.

미국 금융정책 방향이 바뀌었다는 점도 주목할 부분이지만, 법안이 통과된 과정이 더 눈길을 끈다. 민주당 중도파가 찬성표를 던지면서 찬성 67표, 반대 31표로 ‘초당적 지지’를 받고 상원에서 통과된 것이다.

‘도드-프랭크법’은 어떤 법인가. 그동안 민주당 의원들은 월가의 탐욕을 막는다며 ‘도드-프랭크법’을 지키는 데 온 힘을 기울였다. 반면 트럼프 행정부와 공화당은 지나친 규제는 폐지되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민주당의 격렬한 반대가 예상됐지만 정치적 폭발력에 비해 싱거운 결과가 나왔다.

법안의 내용을 떠나 국익에 부합하면 때로는 한 목소리로 법안을 통과시키는 미국 의회가 부러운 것이 사실이다. 나는 미국 의회가 초당적 합의를 이끌어 내는 데에는 많은 요인이 있겠지만 의회조사처(Congressional Research Service)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미국 의회조사처는 의원들의 입법 활동을 지원한다. 지난해 금융 관련 분야에서만 73건의 보고서 작성 및 의회 청문회 증언 등의 업무를 수행했다. ‘경제성장, 규제완화,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에 관해서도 입법 영향을 분석해 모든 의원들에게 제공했으며, 법안 통과 과정에서 의원실 자문 업무도 수행했다.

미국 의회조사처는 ‘정치적 중립성’을 중시한다. 최대한 객관적인 수치와 자료를 제공하는 것이 자신들의 가장 큰 소명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양당이 권위를 지닌 ‘숫자’를 공유하기 때문에 논쟁은 정쟁(政爭)보다 건전한 타협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실제 ‘경제성장, 규제완화,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공화당의 일방적인 승리도, 민주당의 완전한 패배도 아니다. 민주당이 중시하는 소비자보호와 관련해서는 기존 틀을 유지하고 있고 규제 완화도 중소은행으로 한정했다. 시작이 어렵지 건전한 대화가 시작되면 접점을 찾아내는 것은 생각보다 쉬울 수 있다.

여야 대치가 길어지면서 많은 민생법안이 현재 우리 국회에 계류 중이다. 초당적 합의를 위해 한번에 문제를 해결하는 방책은 없다고 생각한다. 결국 ‘권위를 지닌 숫자’를 공유하고 건전한 대화가 이뤄지는 정치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조금씩, 또 오랫동안 노력해야 한다.

미국 의회조사처를 모델로 우리 국회에 입법조사처가 만들어진지 올해로 11년이 되었다. 짧은 시간 괄목할 성장을 보여준 입법조사처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부족하지만 입법조사처의 구성원으로서 조금 더 신뢰받는 기관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이재화 변호사

국회입법조사처 금융공정거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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