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여년 전 사법연수원 입소식 때 받았던 충격은 지금도 생생하다.

예비법조인의 입소식을 축하하기 위해 단상에 자리한 재조 재야 법조계 대선배들의 얼굴과 표정이 하나같이 찌그러지고 화난 사람처럼 험상궂게 보였던 것이다. 하도 이상하여 옆에 있는 친구에게 내 생각을 조심스럽게 말했더니 그 친구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는 것이다.

연수원 입소식 때 충격은 꽤 오랫동안 나를 괴롭혔고 결국 나는 그 이유를 내 나름대로 이렇게 분석했다.

법조계 대선배들의 얼굴이 그렇게 변한 것은, 아마도 수십년 동안 그들이 법을 생각하고, 법을 연구하며 해석하고, 법을 적용하는데 고심했기 때문일 것이다.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한다면 그들은 오로지 ‘법’하고만 수십년을 살아왔기 때문이리라.

법이란 그 속성상 옳고 그름을 가려야 하고, 죄가 있는지 없는지를 밝혀야 한다. 하지만 법은 세상의 극히 제한된 일부만을 관장한다. 세상에는 법학 이외에도 얼마나 많은 학문이 있는가. 자연과학은 차치하고서라도 인문사회과학 속에서도 철학, 역사학, 경제학, 사회학, 심리학, 어문학 등 무수한 학문이 있고 또 문학과 예술도 있잖은가. 만약 법조인이 법 이외의 문학, 철학, 사학 등 다른 분야에 대해서도 배움과 연구에 힘을 쏟는다면 수십년 후 그 얼굴이 그렇게 찌그러지고 험상궂게 변할까?

나는 그 때부터 내 삶의 지침이 될 행동강령으로 이른바 1:9의 원칙을 정했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 중에 법과 법학에 ‘1’이라는 시간을 쓴다면 적어도 그 9배에 달하는 나머지 시간을 법과 법학 이외의 분야에 쓰겠다는 것이다.

만약 수십년 후 내 얼굴이 연수원 입소식 때 보았던 그 대선배들과 같은 모습으로 변해 있다면 결코 참을 수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연수원을 졸업하고 변호사를 갓 개업했을 때 나는 선배 변호사가 의뢰인을 대하는 태도에서 또 한번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그 선배는 의뢰인을 만나기 전에 꼭 화장실에 가서 자신의 외모를 점검하고 필요하면 화장도 했다. 물론 그 선배는 여성 변호사가 아니었다. 나는 의뢰인을 만나는데 그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궁금해서 선배에게 물었다. 그 선배는 “의뢰인에게 조금이라도 좋은 인상을 주고 신뢰를 얻기 위해서”라고 답했다. 변호사는 실력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한다면 진정한 프로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실력은 기본이고 좋은 매너와 믿음을 주는 얼굴도 중요하다는 것을 그 선배로부터 배울 수 있었던 것은 내 법조인생에서 큰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나를 잘 모르는 누군가가 내가 법조인임을 단번에 알아본다면 나는 성공한 법조인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누군가 나에게 뭐하는 사람인지 잘 모르겠지만 참 괜찮은 사람인 것 같다고 말해준다면 법조인으로서의 내 삶은 성공한 것이다.

 

 

/윤상일 변호사

서울회·서울종합 법무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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