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O신문 기자입니다. OOO건에 대해 입장을 여쭤보려고….”
몇년 전 모 의료재단이 동종업체와의 민·형사상 분쟁을 벌일 때였다. 제보를 받아 취재하던 기자는 양측의 입장을 듣기 위해 전화를 걸었다. 늘 그렇듯 취재는 쉽지 않았다. 고소장이나 결정서, 판결문을 입수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입을 굳게 다물었다.
몇번이나 전화를 했지만 그 때마다 “담당자가 없다”고 시간을 끌거나 “내 담당이 아니다”라며 떠넘기려 했다. 천신만고 끝에 사실상 결정권을 가진 임원급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용건을 채 말하기도 전에 통화가 거칠게 끊기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사실 당사자들이 취재를 거부한다고 해서 취재를 못하는 것은 아니다. 생각보다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방법은 많다. 시간과 노력, 언론계 용어로 ‘품’이 많이 들어서 그렇지 마음을 먹으면 취재가 안 되는 분야는 그리 많지 않다.
그 사안에서도 업체 내부관계자들의 은밀한 고백이 있었고, 홈페이지나 관공서 서류 등 공식적인 자료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내용도 많았다. 담당자를 취재했다면 하루 이틀이면 끝날 일을 일주일 넘게 붙잡고 있어야 했지만 어쨌든 기사를 쓸 수 있었다.
어렵게 사실 확인을 끝냈지만 기자는 마지막까지 업체 쪽의 입장을 듣기 위해 노력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통상 사인 간 분쟁에서는 당사자의 주장을 듣지 않으면 백이면 백 “손해배상 소송을 걸겠다”라는 으름장으로 이어지는 만큼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대체로 그런 상황에서 소송을 내는 것은 취재에 비협조적이었던 쪽이다. 며칠씩 공을 들여 전화를 할 때에는 온갖 황당한 이유를 대며 피했던 사람들이 막상 소장에는 “당사자에게 확인도 하지 않고 기사를 내보냈다”며 ‘기레기 취급’하기 일쑤다. 취재거부를 당할 때마다 느끼는 모멸감이 적지 않지만 그래도 마지막까지 연락을 시도하며 매달리는 이유다.
기억하기로 그 사안에서도 기자는 끝내 한쪽 당사자의 입장을 듣지 못했다. 그리고 기사가 나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취재를 거부했던 업체 쪽으로부터 어김없이 소장이 날아들었다. 소장에는 “자신들의 입장이 기사에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는 주장 역시 어김없이 포함돼 있었다.
언론의 자유가 그 한계를 벗어날 때 발동되는 사법적 통제절차가 보도 자체를 막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악용될 수도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최근 방송사 쪽에는 ‘방송금지 가처분’이라는 소송을 많이 당하는 모양이다. 보도 전·후가 다르기는 하지만 취재에 비협조적이었던 곳이 오히려 소송에 적극적인 것은 비슷한 듯하다.
‘숨기려는 자가 범인이다’라는 말이 있다. 그렇다면 언론보도를 막고 싶어 하는 자들은 어떤 자들일까?
/장용진 아주경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