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자의 후예’니 ‘좌파 독재정권’이니 하는 날선 공방이 정치권을 오가고 있다. 과연 독재란 무엇인가? 우리 헌정사에서는 대통령 임기의 고정성을 무시한 중임제한변경의 개헌이 대개 독재의 길을 여는 서곡이었다. 그러나 시간적 권력분립을 파괴하는 장기집권만이 독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대통령의 입법부 지배도 기능적 권력 분립을 파괴함으로써 독재로 이어질 수 있다.

우리 헌정사에서도 조작된 민의를 빌미로 대통령의 입법부 지배를 강화하려는 작태는 반복됐다. 대통령의 권위에 도전하는 단원제국회를 둘로 쪼개놓으려는 것이 1952년 양원제 개헌이었다. 악명 높은 유신헌법은 대통령에게 국회의원 정수 3분의 1을 실질적으로 지명할 수 있는 특권을 부여했다. 신군부의 1980년 헌법 당시 선거법도 집권당에게 국회의원 정수 9분의 2를 비례대표의석으로 추가시켜 주었다.

대량 사표를 방지하고 지역 정당체제를 극복한다는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기실,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도입은 대통령의 입법부 지배를 극단적으로 강화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40% 남짓 득표의 대통령이 정권을 장악하는 승자독식의 대통령제에서, 60%에 육박하는, 그야말로 대량의 사표는 내버려둔 채 왜 입법부 구성에서의 사표만 문제 삼는가. 지역 간 감정적 거리감이 엄존하는 현실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만 도입하면 그것이 신묘한 마법이라도 부려 지역정당이 바로 정책정당으로 탈바꿈 된단 말인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택한 독일의 최근 2017년 총선에서 기민련·기사연은 33.0%, 사민당은 20.5%, 독일대안당은 12.6%, 자민당은 10.7%, 좌파당은 9.2%, 녹색당은 8.9% 의석을 차지했다. 1당과 2당을 합쳐 과반수 의석을 간신히 넘긴 극단적 정당분열 상황이 초래된 것이다. 독일은 의원내각제인 까닭에 연정으로써 그럭저럭 정부를 꾸려가지만, 대통령제라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진다. 즉, 신디 스카치(Cindy Skatch)가 입헌적 독재로 나아갈 위험성이 가장 크다고 경고한 바로 ‘분리된 소수’의 헌정위기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유신헌법의 유정회의원과 1980년 헌법의 전국구의원이 명시적인 헌법, 선거법 조문으로써 대통령 측에 의석을 얹어주는 방식이라면,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묵시적인 ‘뒤베르제의 법칙’으로써 반대 정당들의 의석을 덜어내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더하느냐 빼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 대통령의 입법부에 대한 지배를 극단적으로 강화한다는 데에는 실질상 차이가 없다. 이 선거법개정안에 반대하는 측이 ‘독재자의 후예’인지는 모르겠으나, 이를 밀어붙이는 측이야말로 후일 ‘독재자의 모태’라는 오명을 쓰게 될 공산이 크다.

 

 

/신우철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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