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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고금]의뢰인이 변호사를 속일 때
안귀옥 변호사  |  lawyeran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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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0호] 승인 2019.06.03  09:3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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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소장 송달 장소를 보완하지 못해 법원으로부터 소장각하 명령을 받았다. 사연은 이랬다. 85세 된 할머니 한분이 19살에 결혼을 하고 아이들 5명을 낳았는데 지독한 가정폭력을 당하다가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35살에 집을 나와서 50년 동안 가족들과 단절되어서 혼자 살아오셨다고 했다.

노년에 생활이 곤궁해서 노령연금과 지하철 안내도우미를 하면서 버는 소득 20만원으로 근근이 살아가고 있는데 가족관계등록부에 남편과 자식이 5명이나 있어서 수급혜택을 못 받고 있다고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할머니 사정이 딱하다는 생각에 일단 이혼소송을 통해 부양가족이 없는 것으로 서류를 정리해드리기로 했다.

그런데 할머니가 가져오신 기본증명서, 가족관계증명서, 혼인관계증명서에는 할아버지와 혼인신고는 되어 있는데, 할아버지의 이름과 생년월일 이외에는 주민등록번호도 없고 주소지도 없었다. 그 뿐만 아니라 가족관계등록부에는 5명의 자녀들이 있는데 이 자녀들도 이름과 생년월일 이외에는 주민등록번호나 주소지가 전혀 나타나지 않는 희한한 서류였다. 일단 이혼소장을 제출한 후에 할아버지의 인적사항을 알기 위해서, 할아버지 등록기준지 구청에 인적사항에 대한 사실조회신청을 했으나, 생년월일만으로는 특정할 수가 없어서 조회가 불가능하다는 회신이 왔다. 다시 할머니의 주민등록초본상 할아버지와 마지막으로 사셨다는 구의 구청과 행정안전부에까지 사실조회를 했지만 마찬가지였다. 할머니에게 혹시 집을 나오신 후에 친척들을 통해서라도 할아버지와 아이들이 어디에서 산다는 이야기를 들은 일이 있으시냐고 물었더니 오래 전에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 같단다. 외교부와 출입국관리사무소에도 출국사실에 관한 사실조회를 했지만 ‘대상자들의 자료가 일절 없음’이란 회신이 왔다. 법원에서 계속 송달장소에 대한 보정명령을 내리긴 하지만 더 이상은 가족의 행방을 찾을 방법이 없었다.

할머니의 이혼 목적이 수급 혜택을 받기 위한 것이니 가족단절에 의한 수급 혜택 신청을 하면 될 것 같아, 할아버지를 찾을 수 없다는 사실조회 회신서들을 첨부해 구청의 복지담당자에게 그 간의 경위에 대한 간곡한 편지까지 써서 보내드리고는 확인 전화를 했다.

담당자는 뜻밖에도 그 할머니가 이미 오래 전부터 가족단절로 인한 수급혜택을 받아왔던 분인데, 그 후에 장기간 미국 여행을 한 것이 나타나 수급이 단절된 분이라고 했다. 동사무소에서 추적 조회를 한 결과는 할아버지는 이미 오래 전에 폐암으로 사망하신 것으로 추정되고, 자녀들은 미국에 살고 있어서 할머니가 미국의 딸 집에 다녀오신 것 같다는 것이었다.

갑자기 헉 소리가 나왔다. 할머니는 집을 나온 후 50년 동안 단 한번도 남편이나 자식을 만나거나 소식을 들은 것이 없는데 서류상 가족들이 있어서 수급혜택을 못 받았다고 하는데, 웬 남편 사망이며 딸들의 미국생활인가. 배신감도 들었지만 일단 서류상 가족들의 부양을 받지 못하는 것은 맞는 것 같으니 자료를 한번 검토해달라면서 전화를 끊었다.

간혹 변호사를 속이면 법원도 속일 수 있고 행정부도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의뢰인들이 있는 경우에 단호히 거절을 하지만 이번에는 의뢰인에게 속아주는 쪽을 택했다. 변호사를 속인 것은 나쁘지만 오죽하면 85세 노인이 그랬을까 하는 생각과 국민들의 신상에 관한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은 행정부의 과실도 크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안귀옥 변호사·인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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