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소를 했다. 법정에서 선고를 들은 직원이 문자메시지로 보고했고, 사무실에서는 환호성이 울렸다. 의뢰인에게 전화를 했으나, 받지 않았다. 나중에 안 일이었지만, 그날 선고 법정에 의뢰인은 출석을 했다.

소송 대리 업무로 여러 해를 일한 변호사들은 이쯤 되면 감이 온다. 승소한 의뢰인이 승소와 동시에 사라진다. 주소, 전화번호, 주민등록번호까지 알지만 별 소용이 없다. 주지 않으려는 자와 받으려는 자, 우리 자신이 다시 그 지긋지긋한 소송의 당사자가 되어야 하는가. 유리하지 않은 사안이어서 더욱 더 집요하게 법리를 주장하고, 온갖 증거와 정황을 발굴하여 제시하며 입증에 최선을 다했기에 승소에 대한 기쁨은 더욱 컸다. 그리고 그 기쁨의 순간도 잠시, 오랜 노고와 애씀의 시간들이 배신감으로 끝이 난다.

“승소만 해 주시면 이 은혜는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착수금을 깎아 주시면 성공보수금은 두배로 드릴게요.” “이 사건을 싸게 해 주시면, 앞으로 맡길 사건이 많이 있습니다.”

순진한 변호사들을 현혹할 말은 무궁무진하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이 변호사라면, 의뢰인에게 성공보수금 청구 소송을 제기하고, 강제집행을 하면 되지 않느냐는 반문이 쉽게 나오지는 않을 터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말도 있다. 결국에는 분한 마음으로 일을 벌였더라도 약속된 돈을 받아내는 것은 결코 만만치 않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너무나 잘 알 테니까.

그러고 보면 우리가 업으로 하는 소송이란 것이 원래 그렇다. 법의 이름으로 억울함을 풀고자 막상 소를 제기하여 승소하고 강제집행을 해 보아도, 상대방의 끊임없는 숨바꼭질, 강제집행이라는 그 현란한 미로 속에서 다시 길을 잃고 만다. 승소 판결이란, 현실에서는 한낱 허무한 종잇장, 별 쓸모도 없는 전리품일 때가 많다.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는 말이 한탄처럼 내 입을 맴돌 때도 있다.

대기업 소송을 맡지 못한 구멍가게 변호사의 애환인가. 변호사회에 성공보수를 맡기는 제도를 제안해야 하나. 담보라도 잡아놓고 소송을 수임해야 하는가. 별별 생각을 해 보아도, 결국은 자포자기의 결론으로 마음을 다스린다.

돈이 없어서 못 주는 의뢰인들, 미안한 마음을 감당하기 어려워 도망칠 수밖에 없는 의뢰인들을 미워하지 말자. 민법상 위임 계약의 기본은 무상계약이라더니, 인류 역사상 변호사란 직업이 돈 버는 수단으로 생긴 것은 아니지 않았을까하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처음부터 의뢰인이 쉽게 마련할 수 있을 금액으로 변호사 보수를 책정할 수 있는 그 날이 오면, 그들도 쉽게 약속을 지키고, 우리도 상처입지 않으리.

빨리 자식들 다 키우고, 소박하게나마 노후를 준비한 후, 먹고 사는 일이 더는 무섭지 않은 노년의 어느 날, 의뢰인들에게 차비 정도만 받고 소송을 대리하며, 한손엔 지팡이를 한손엔 기록을 들고 법정에 드나들 할머니 변호사가 될 날을 꿈꾼다.

 

 

/이재숙 변호사

서울회·법무법인 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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