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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기고]역사의 심판
진미경 한국외국어대학교 초빙교수  |  mkmkchi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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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0호] 승인 2019.06.03  09:3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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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죄를 지으면 벌을 받는다. 그런데 국법을 위반하는 죄를 지은 적이 없는데도 국가로부터 벌을 받는 경우가 있다. 아버지는 국법을 준수하며 살았는데도 국가폭력에 의해 죽음의 문턱까지 갔었다.

전 서울대학교 법대 학장과 고시위원장을 지낸 선친 진승록은 1961년 5.16 직후 새벽 정체불명의 사람들에게 끌려갔다. 가족은 누가, 왜, 어디로 아버지를 끌고 갔는지 알 수 없었다. 1961년 12월 중앙계엄 군법회의 1심은 선친에게 간첩죄와 간첩방조죄로 사형을 선고했다. 판결문에는 변호인이 없으며, 그 당시 방청석에서 재판을 지켜봤던 친척도 변호인 없이 아버지 스스로 변호했다고 증언한다. 고등군법회의 2심에서 간첩죄는 무죄로 됐으나 간첩방조죄로 대법원에서 10년 형이 확정됐다. 불법 연행된 지 2년여 만에 형 집행 정지로 석방됐다. 군사 정권이 안정을 찾아가고 있을 때였다.

국가보안법 위반 전과자인 아버지는 대학 강단에 설 수 없었고 민법학의 선구자임에도 책을 저술할 수 없었다. 심리적으로도 중앙정보부에 또 끌려갈 지도 모른다는 피해의식에 시달리셨다. 형사는 수시로 찾아왔다.

비극의 발단은 6.25 전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버지는 당시 서울대학교 법대 학장이었다. 6.25가 일어나자 당시 최규동 서울대학교 총장은 학교를 지키라고 지시했다. 아버지는 사흘간 밤새 법대를 지켰다. 당시 1학년 신입생이고 후에 법대 학장을 지낸 박병호 학장은 6월 27일 학교에 갔다. 아버지는 법대 학생들을 본관 앞에 모이게 했다. 전쟁이 일어나 군수물자가 부족하여, 법대 학장에게 나온 지프차를 일선으로 보낸다며 눈물을 흘리며 박수를 쳤다. 박병호 학장은 서울대학교나 다른 기관에서 지프차를 자진 헌납하거나 눈물로 전송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일이 없다고 증언한다. 아버지는 대한민국을 사랑하셨고 국군을 사랑하셨다.

아버지는 인민군이 서울로 들어온 직후 정치보위부로 연행됐다. 아버지는 7월 상순 납북자 일행 80여명과 함께 열차 편으로 평양으로 압송됐다. 죄명은 애국애족 강연, 고시위원회 상임이사로 판·검사 등용, 서울대학교 법대 학장으로 학생지도 등이었다. 같은 교화소에 억류된 인사는 아버지의 죄가 무거워 사형당할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대한민국과 대한민국 국민을 위한 일이 북한에서는 죽어야 하는 죄인 것이다.

아버지와 함께 납북됐던 서울대학교 법대 엄민영 교수와 박관숙 교수는 무사히 서울로 귀환했으나 끝내 복직하지 못했다. 아버지는 국군 평양 입성 직전 폭격과 인민군 퇴각으로 평양이 어수선하던 때 교화소를 탈출했다. 국군 특무대 중위인 서울대학교 법대 제자가 아버지를 알아보고 신원을 확인해줘 특무대 지프차를 타고 서울로 돌아왔다. 아버지는 대한민국 정부기관의 조사를 받고 상임고시위원으로 복직했다. 아버지 역시 엄민영 교수나 박관숙 교수처럼 서울대학교 법대에 복직하지 못했지만 1952년에 고시위원장으로 승진하여 1955년까지 근무했다.

아버지는 광복 후 김구 선생님이 설립한 건국실천원 양성소에서 상임위원으로 일하며, 해방공간에서 대한민국 정부 수립 준비에 기여했다. 정부 수립 후에는 법전편찬위원, 서울대학교 법대 학장, 고시위원장으로 활동하며 국가발전에 이바지했으나 5.16 군사 정변으로 갑자기 죄인이 됐다.

마키아벨리는 “인간사 반은 운명이고 반은 인간 의지”라고 했다. 그러나 아버지의 삶은 인간의 의지가 개입될 부분이 전혀 없었다. 정당하지 못한 군사 정변의 희생양이었기 때문이다.

법학자의 막내딸인 필자가 정치학을 공부하게 된 계기는 아버지의 고초를 겪고서이다. 도대체 이데올로기란 무엇인가? 국가란 무엇인가? 스페인 내전(1936~1939)에 참전한 헤밍웨이는 이념의 허구를 깨닫고 ‘누구를 위하여 조종은 울리나?(For Whom the Bell Tolls?)’를 썼다. 이념을 위해 많은 사람이 죽어가 장례식 때 조종을 울리지만 이념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권력자를 위한 것인가? 아니면 국민을 위한 것인가?

아버지는 형집행 정지로 석방된 후부터 변호사 자격을 회복하려고 노력했다. 1982년 12월 변호사 등록업무가 법무부에서 대한변호사협회로 이관됨에 따라 1983년 3월 변호사 자격이 회복됐다. 아버지는 생전에 변호사 재등록을 해 준 대한변호사협회에 감사하며 변호사로서 자부심을 가졌다. 재심을 결심할 때부터 무죄 판결이 나올 때까지 성심을 다해 도와주신 서울대학교 법대 여러분과 대한변호사협회 변호사분들께 아버지를 대신하여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 진승록 전 서울대 법대 학장 / 2019. 5. 16. 서울고등법원 재심 무죄 선고에 기해 투고된 글입니다.

/진미경 한국외국어대학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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