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우던 강아지가 죽었다. 한낱 동물일지라도 죽음 앞에서는 마음이 숙연해진다. 가슴 한켠이 무겁다. 강아지가 없는 허전한 자리를 느끼면서, 산다는 것과 죽음이라는 것에 대하여 생각했다. 죽음 앞에서 떠오른 사건이 있었다.

그는 변론종결을 앞두고 합의를 위하여 기일을 연장받고 있었다. 그런데 한동안 연락이 안됐다. 그리고 받게 된 전화 한 통화. 그가 자살을 했다는 소식이었다.

부동산을 매수하여 개발을 하려던 계획 아래 피해자로부터 돈을 빌려서 계약금을 치르고 사업을 전개했는데, 예정되어 있던 금융기관 대출이 이루어지지 않음에 따라 사업이 실패로 돌아갔다. 급기야는 사기로 고소를 당해 재판에까지 이른 사건이었다.

그의 인식 속에서는 자신이 상대방을 기망하려는 생각은 없었던 것으로 보였다. 피해자로부터 돈을 빌릴 당시에는 금융기관에서 대출을 장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무죄를 주장하기에는 기록 속의 증거와 정황만으로는 어려움이 있었다. 합의를 해오겠다며 시간을 조금만 달라고 했던 그는, 결국 죽음이라는 변론으로 유죄판결을 면했다.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법 앞에서’에는 오랜 기간을 법에 들어가지 못한 채, 법의 입구 앞에서 죽어가는 시골 사람이 묘사되어 있다. 시골 사람은 법으로 들어가려고 하나, 문지기는 지금은 들어갈 수 없다고 한다. 시골 사람은 오랜 기간 문지기를 설득하려고 노력하나 결국 실패하고 만다. 시골 사람은 죽어가면서 마지막으로 문지기에게 질문을 한다.

“모든 사람들이 법을 얻기 위하여 노력할 것인데, 여러해 동안 아무도 들여보내 달라는 사람이 없으니 어쩐 일이냐”라는 질문이었다.

문지기는 이에 답을 한다. “여기서는 다른 그 누구도 입장 허가를 받을 수 없어. 이 입구는 오직 당신만을 위한 것이었으니까.”

어쩌면 그는 들어갈 수 없는 자신만의 법 앞에서, 굴복할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법도 없고, 문도 없이, 단지 문지기의 ‘문지기 역할’만이 남아있는 부조리와 모순에 대하여 그는 죽음이라는 대답으로 응대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아닐까.

기록 속에 드러난 그의 행동은 외형상 사기죄에 해당한다. 그러나 금융기관의 대출약속에 대한 입증이 조금만 명백했다면, 피해자로부터 받은 금원의 일부가 본인의 법인 계좌로 들어가지만 않았다면 아마도 그의 사건은 무혐의로 끝났을지도 모른다. 아쉽게도 그의 법에는 그러한 목록은 없었다.

변호사는 어떠한가. 그에게, 그리고 시골 사람에게 변호사는 어떠한 존재였을까. 문지기의 또 다른 모습은 아니었을까.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소송’에서 주인공 K는 말한다. “그(변호사)는 여태껏 한 일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법이라는 거대한 존재 앞에서 무력하기만 한 의뢰인들에게 변호사는 유일한 안내자일지도 모를텐데. 법을 직업으로 삶는 변호사의 어깨가 무거워지는 하루다.

 

 

/이재진 변호사

경기중앙회법무법인 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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