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 검사에게는 법률이라는 무기를 구사할 수 있는 지력(知力), 진술을 이끌어내는 기백과 함께 무엇보다도 병소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정확한 안력(眼力)이 요구됐다. 우리 기자는 그러한 사명감에 공감을 하고, 보다 빨리, 더 상세하게 특수부의 수사를 전하기 위해 서로 맹렬한 경쟁을 해왔다. 그 밑바탕에는 그들의 안력에 대한 흔들림 없는 신뢰가 있었다.”

일본 산케이(産經) 신문사 소속 검찰 출입 기자인 이시즈카 켄지는 동경지검 특수부가 세계 최강의 수사기관이라고 믿었다. 지력과 안력을 모두 갖춘 검사들이 포진했기에 ‘추상열일(秋霜烈日ㆍ가을 서리와 뜨거운 햇볕)’이라는 폼 나는 수식어까지 특수부 기사 앞에 후하게 얹어주었다. 한 때 기소율 99%를 자랑했던, 거악 척결 수사로 집권당의 오랜 독재까지 종식시킨 동경 특수부였기에 그의 신뢰는 일본 국민들의 일반적 인식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이시즈카 기자는 2010년 자신의 저서 ‘특수(特殊) 붕괴(崩壞)’를 통해 애정 했던 일본 특수부의 종말을 단칼에 선언했다. 이제는 지력과 안력을 갖추지 못한 아마추어 검사들이 특수부에 포진됐다는 단순 명료한 이유에서다. “더 이상 일본 특수부는 프로 수사 집단이 아니다. 정보의 배후에 무엇이 있는지를 꿰뚫어 볼 수 있는 인재가 없기에, 안이하게 사건을 짜 맞추고 있다.” 깊은 신뢰가 사라진 자리에 오롯이 서 있는 비판의 칼날. 뭔가 낯설지가 않다.

2008년 삼성 특검부터 검찰을 출입했으니 직간접적으로 한국 특수부 검사들을 봐 온 시간만 10년이 넘는다. MB 정권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 등에 대한 논란의 특수수사부터, 현 정권의 사법농단 수사까지. 수도 없이 많은 특수수사를 취재하며 나 역시 이시즈카 기자와 비슷한 고민의 파고를 넘고 있다. 다만 아직 한국 특수수사가 일본처럼 붕괴된 것은 아니라고 판단한다는 차이 정도는 있겠다.

실제로 현직 특수부 검사들을 만나면 여전히 빛나는 지력과 안력을 확인할 수 있다. “검사라면 누구나 특수부를 꿈꾼다.” 그 꿈을 이룬 ‘특수통’들은 드라마에 나오는 폼 나는 사무실도 아닌, 2평도 안 되는 작은 방에서 아재 냄새 풀풀 나는 방한용 외투를 입고 숨겨진 수사 단서를 예리하게 찾아낸다. 그리곤 사람들 눈을 피해 허름한 골뱅이 집에서 새벽 늦게 소주 한 잔을 하며 다시금 자신들의 지력과 안력을 가다듬는다.

그럼에도 그들의 모습에서 연민보다는 여전히 아쉬움을 읽는다. 확인 가능한 지력과 안력은 갖췄지만, 이 능력치를 좌지우지하는 전제에 대해선 불안함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법률이라는 무기를 구사할 수 있는 지력은 ‘권력의 뜻을 거르지 않는 수사’에서만 발휘되고, 병소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정확한 안력은 유독 재벌 등 기득권에겐 실눈처럼 뜨여 있는 것이 아니냐는 근거 있는 의구심. ‘공평하며 권력 지향적이지 않은 수사 아이템 선택’이 없이는 제 아무리 뛰어난 지력과 안력이 있어도 특수수사는 ‘독이 묻은 칼’일 뿐임은 명백하다는 확신이다.

문무일 검찰총장이 최근 특수수사 축소를 외쳤다. 무조건 환영이다. 그러나 특수 축소 시대가 오더라도 우리 검찰 출입기자들은 특수부를 계속 파고 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특수부 검사들의 올바른 지력과 안력이 발휘되도록, 잘못된 전제들을 찾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시즈카 기자처럼 자국 특수부를 포기하지 않았고, 방향만 올바르다면 여전히 한국 특수부가 거악 척결의 본령을 수행할 수 있다고 아직은, 믿고 있다.

 

 

/한국일보 정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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