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법무관 17년 근무 후 고향 청주에서 개업한 지 22년이 지났다. 넓지 않은 충북법조(忠北法曹)지만, 그동안 바뀐 게 많다. 11년 전 산남동으로 이전하기 전에 있던 수곡동 시대는 변호사 숫자가 많지 않아 대부분 학교 시절부터 알던 사이였고, 점심도 한집에서 모여 먹었다. 이제는 숫자가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 오래된 변호사들 이외에는 잘 알지 못한다. 그뿐만 아니라 다루는 사건의 종류나 선호하는 사건, 그리고 제도도 많이 바뀌었다.

대한변협에서 수년 전부터 전문변호사 제도를 실시해 온 결과, 많은 이들이 절차를 거쳐 전문을 표방하고 있고, 때로 무슨 전문이냐고 묻는 이들도 있다. 그렇지만 중소도시 근무자로서 장단점이 있어서 아직 전문을 표방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 근래 젊은 변호사들이 ‘이혼 전문’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있는 것을 많이 보게 된다. 나로서는 개업 이후 지금까지 법률사무소를 운영하면서 가장 많은 시간을 들여 상담에 응한 것이 바로 이혼사건이다. 크리스천이고, 또 간간히 주례를 맡기도 하는 입장에서 이혼에 반대하기 때문에 이혼상담 하러 온 분들에게는 다른 사건의 두세배 시간을 들여 얘기를 들어주고 나름의 조언을 통해 이혼을 만류해 왔다. 그런데 그런 기조가 조금씩 바뀌어 최근에 이르러서는 얘기는 자세히 들어주되 이혼을 만류하지는 않는 편이다.

무엇보다도 이미 깨진 가정이 너무 많아, 도저히 내 힘으로는 회복이 안 되는 경우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근래 몇년간 취급한 이혼 사건 수가 다른 분야보다도 훨씬 많아져 사실상 이혼전문 변호사가 되었다. 간혹 지인들이 이혼사건도 하느냐고 물으면 우스갯소리로 “내가 바로 이혼 전문”이라고 말은 하지만, 내놓고 이혼 전문을 표방하기에는 뭔가 개운치 않다. 실제로 이혼사건이 다른 사건에 비해 시간도 덜 들고 논점도 많지 않다. 그리고 대부분 조정으로 끝난다. 서류작업을 많이 안 해도 되고, 재판부도 조정을 많이 권유하며, 또 변호사 입장에서도 당사자들이 말을 잘 듣는 편이니 편하다. 이혼하는 커플도 많다. 그러니 이혼 전문을 표방하는 변호사들이 늘어나는 것을 비판할 수는 없다.

그러나 배부른 소리라고 비난할지 모르지만, 우리가 너무 쉬운 것만 찾아가는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개업 초부터 맡은 사건에 대해 밤을 새워가며 공부하고 준비하여, 비록 결과가 좋지 않은 경우라도 의뢰인과 신뢰를 쌓았다. 또한 라이온스 활동 등 봉사활동과 다양한 지역행사에 참여해 이웃을 위해 조금이라도 나누려고 하면서, 자연스럽게 변호사로서도 많이 쓰임 받게 되었다. 아무리 경쟁이 치열하다고 해도, 법을 도구로 이웃을 섬기고 가진 것을 나누려는 소명감과 자부심 없이 변호사 업무를 계속하기 쉽지 않은 것 같다. 선비 사(士) 자 쓰는 ‘변호사’로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유재풍 변호사

충북회·법무법인 청주로

저작권자 © 법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