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어느 구치소 재소자들 사이에서 판사들에 대한 일종의 ‘리스트’가 있다는 이야길 들었다. 한 법원의 형사단독 재판장은 검찰 구형량에 딱 절반의 형만 선고한다거나 어떤 형사항소부는 대부분 ‘항소 기각’ 판결만 내린다고 해서 재소자들 사이에서 기피 재판부로 꼽힌다는 것이다. 해당 재판부에 배당되면 선고 전부터 항소와 상고를 결심하기도 한다고 한다. 실제 그 재판부들이 그런 판결을 많이 했는지는 확인하기 어렵다. 또 설령 그런 판결이 대부분인 게 맞다 해도 그것이 과연 아무런 고민도 없이 마치 찍어내듯 ‘반토막’과 ‘항소 기각’만 했는지는 더욱 알 수 없다. 그래도 당사자들 사이에서 얼마나 의문이 드는 경험이 쌓였으면 이런 별칭까지 붙은 것인지 생각해 봤다. 피고인조차 재판부를 탓하며 자신의 죄는 돌아보지도 않도록 하는 판결은 과연 어떤 의미를 갖는지도 궁금해졌다.

믿을 수 없는 재판은 모두에게 불행이다. 누군가의 인생을 움켜쥐고 있는 판사를 믿지 못하는 경험이 쌓이면 갈등과 혼란은 모두의 몫이 된다. 지난해 6월 1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집 근처 놀이터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기억에 남는 한 마디가 있다. “대법원 판결이 무너지면 나라가 무너집니다.” 재판개입이나 판사 블랙리스트 관여 등 모든 의혹을 철저히 부인했고 이는 검찰 수사 결과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지만 그 한 마디 문장 그대로의 뜻은 와 닿았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이 검찰 수사를 거치는 동안 양 전 대법원장 기자회견 내용은 거짓이었다고 평가될 만큼 많은 의혹들이 밝혀졌다. 그 사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이나 포털사이트에 판사들의 이름이 자주 오르내리는 것이 눈에 띄었다. 1·2심에서부터 이해하기 어려운 판결을 한 판사들에 대한 비판이 잇따라 터져 나왔고 순식간에 여론의 힘을 얻었다. 나라가 무너질 만큼은 아니어도 법원에 대한 불신이 모이고 있다는 느낌은 충분히 전달되는 듯 했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지난 9일 검찰로부터 비위 통보를 받은 66명 가운데 10명에 대해서만 징계를 청구하며 “1년 반 넘게 진행해 온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과 관련한 조사 및 감사를 마무리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66명 가운데 32명은 애초에 징계시효가 지났다고 해도 34명 중 24명에게 더 이상 책임을 물을 길이 없게 됐다. 국민들은 물론 판사들조차 24명이 어떤 이유로 징계를 피하게 됐는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들 가운데 어떤 행위는 문제가 없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일부 판사들의 문제라고 치부하기엔 1명의 판사라도 법원에 대한 믿음을 흔들 수 있는 무게감을 생각하면 66명은 결코 적은 수가 아니다. 일부의 경험이 쌓이면 곧 전체를 향하게 된다. 믿지 못함의 불행을 덜어낼 수 있는 기회를 사법부 스스로 쌓아가길 바란다.

 

/허백윤 서울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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