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형이나 사면의 가능성을 절대적으로 배제한다면 무기징역보다는 사형이 더 윤리적이고 인간적이라는 사형존치론자는 지금도 존재한다.

반면 문명국가에서 사형이란 낡고 무익할 뿐만 아니라 비윤리적인 제도라는 것이 130여년 전 체호프의 소설 속 학자와 기자들 대다수의 견해다. 양측의 열띤 논쟁은, 단번에 죽이는 사형이 천천히 죽이는 종신형보다 더 인간적이라고 강변하는 부유한 은행가가 주최한 파티에서 벌어진다. 여기서 젊은 변호사는 자신에게 선택권이 주어진다면 종신형을 택하겠다고 단언한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그의 오만함을 비웃는 은행가와의 사이에 15년의 자유를 담보로 한 ‘내기’가 시작된다. 은행가의 집 정원 바깥채에 자발적으로 감금된 그는 15년 동안 바깥채의 문턱을 넘을 권리, 살아있는 사람을 보거나 목소리를 들을 권리, 편지나 신문을 받아볼 권리를 박탈당한다. 대신 책이든, 악보든, 술이든 그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들은 작은 창문을 통해 무한정 공급된다.

소설은 15년 만기를 앞둔 마지막 밤에서 시작한다. 날이 밝으면 이제는 자신의 전 재산이 되어버린 이백만 루블을 내어주고 노(老)은행가는 파산을 맞이해야 할 절박한 처지이다. 사형이 종신형보다 낫거나 나쁘다는 것을 증명하지도 못한 채 전도유망한 젊은 변호사에게서 15년을 빼앗았지만, 이제는 되레 그 변호사에게 자신의 전 재산을 빼앗기게 됐다는 위기감에서 은행가는 살인의 고의를 가지고 바깥채 문을 연다.

15년의 세월 동안 자발적 수인(囚人)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우선 외관은 간신히 살가죽을 입혀놓은 해골, 고작 마흔이라는 사실을 믿을 수 없으리만치 쇠락한 노인의 형상이었다. 베개로 살짝 누르기만 해도 금방 숨이 끊어질 것 같은 그의 머리맡에는 종이 한장이 놓여있었다. 그는 자유와 생명과 건강을, 그동안 자신이 읽은 세상의 수많은 책 속에서 지상의 축복이라고 불리는 모든 것들을 경멸한다고, 또 이러한 경멸을 표현하기 위해 기한이 다 되기 5시간 전 그곳에서 나갈 것이며, 그럼으로써 스스로 계약을 위반하노라고 적었다.

작품 속 변호사가 자발적 감금을 감행한 스물다섯 즈음 나는 러시아문학을 공부했고, 그가 독방을 나선 마흔이 넘어서야 변호사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면서 이따금 그의 감금된 15년과 스스로 걸어 나간 15년 이후의 그에 대해 생각해보곤 했다. 문학도이던 당시에는 가늠되지 않던 15년이었지만, 변호사인 지금 15년형을 살거나 살았던 사람을 대면하는 일은 낯설지 않은 일상이 됐다. 물론 현실에서 소설 속 그를 연상케 하는 수형자를 만나기는 어렵다. 자유를, 생명을 경멸한다고 했지만 결국 그는 그 경멸로써 자신의 자유와 생명뿐만 아니라 은행가의 자유와 생명도 구했다. 모든 삶의 이야기는 인생무상과 인생유전으로 환원되지만, 거기에 개별적 형용사를 붙이는 작업이 무의미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아름다운’ 인생무상과 ‘처절한’ 인생유전.

 

/김계희 변호사·대구회

저작권자 © 법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