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대법원장이 구속되고 고위 법관들이 줄줄이 검찰의 포토라인에 섰다. 굳은 표정의 참고인 중엔 기록을 빠르게 읽는 방법을 알려주셨던 부장님도 있어서 안타까움을 더 했다.

상고허가제를 도입해서 연방대법원의 기틀을 세운 미국의 제10대 연방대법원장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 한국의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가 되고 싶었던 전직 사법부 수장의 재판거래 의혹을 놓고선 여러 말들이 나온다. 삼권분립을 무시한 부적절한 처사라는 비판과 사법 헤게모니 장악을 위한 근거 없는 부풀리기라는 반격까지.

처음에는 개인적인 안타까움을 넘어서는 특별한 관심은 없었다. 그런데 차츰 그게 아니었다. ‘사법농단’은 남 일이 아니었다.

요즘 따라 공격적인 피고인들이 부쩍 늘었다. 재판부나 변호인을 공격하는 논리도 상당히 매서워졌다. 한 피고인은 원심 재판부가 기록도 제대로 보지 않고 유죄판결을 내렸다면서 울분을 토했다. 실력이 뛰어난 인권 변호사로 국선변호인을 교체해 달라고 연일 항소심 재판부에 편지를 썼다. 어떤 피고인은 재판부가 병합 신청을 받아주지 않자 대법원의 지시를 받고 재판을 하지 말라면서 재판을 거부하기도 했다.

맞을 뻔한 적도 있었다. 한 구속피고인은 자신이 한 기피 신청을 재판부가 계속해서 기각하자 판사는 법 위에 있냐면서 법정 마이크를 여성 경위에게 던지려고 했다. 교도관들이 피고인을 덮치는 사이에 난 좌배석 법대 앞으로 황급히 몸을 피했다. 재판거래 의혹 사건에서 촉발된 사법 불신의 유령이 지방법원 여기저기에 떠돌고 있다.

최근 스포츠에서는 비디오 판독 시스템을 도입해서 주심 판단에 대한 불신을 희석시키고 있다. 유럽축구에 도입된 VAR(Video Assistant Referee)에 따르면, 주심은 애매한 장면을 경기장에 설치된 비디오 화면을 통해 반복해서 본 후 판정을 내릴 수 있다.

한발 나아가서 오는 6월부터는 공격수의 팔에 맞고 들어간 골은 무조건 노골이 된다. 그동안은 공격수의 의도가 없었다고 주심이 판단하면 골이었지만, 숱한 논란 끝에 판단 여지를 없애버린 것이다.

경기의 흐름을 끊고 주심의 권위가 떨어진다는 비판이 있었지만, 선수들의 땀과 노력에 따른 공정한 결과가 더 중요하다고 많은 이들이 생각했다. 사람의 판단에는 항상 오류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통제가 필요하고, 작은 불신이 겹겹이 쌓이면 스포츠 정신 자체가 훼손될 거라는 의견에 공감했다.

사법부는 유럽 축구계가 위기에 대처하는 방식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선 법조인들도 스스로 사법 불신은 남 일이라고 애써 무시하고 있지는 않는지, 오히려 불투명한 사법 시스템을 이용해서 개인적인 이익을 취하려고 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사법 불신의 유령이 더 이상 돌아다니지 않도록 나도 당사자들의 마음 속에 사법 신뢰의 작은 씨앗을 뿌려야겠다.

 

 

/노승민 변호사·경기북부회

저작권자 © 법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