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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나침반]누구도 재판관이면서 당사자일 수 없다
신우철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zwingerplatz@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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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6호] 승인 2019.04.29  09:3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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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의 효시라는 1803년 마셜 대법원장의 ‘마베리 대 매디슨’ 판결이 1610년 에드워드 쿠크 경의 ‘보넘 사건’ 판결에서 유래한 사실은 별로 알려져 있지 않다. 기실 “(미국)헌법에 어긋나는 법률은 무효”라는 문장은 “(영국)보통법에 어긋나는 법률은 무효”라는 문장을 베낀 것이다. 양자는 그 판단의 준거가 성문의 헌법 조항이냐, 불문의 판례법 원칙이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토머스 보넘은 ‘왕국의 눈과 혼’이라는 케임브리지대학에서 7년의 공부 끝에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다시 14년의 공부 끝에 의학박사 학위까지 취득한 개업의였다. 그런데 왕립의과대학은 그가 무면허 의료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7일의 금고형에 처했다. 당시 왕립의과대학은 헨리 8세 때 의회입법에 의거해 무면허 및 부실 의료행위를 단속할 특권을 부여받고 있었던 것이다. 쿠크 경이 원장으로 있던 항소법원은 3대 2로 보넘의 항소를 인용했다. 왕이 부여한 특권을 규정한 입법도 ‘보통법(common law)’에 따라 통제돼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사법절차에서 의회입법을 무효로 선언한 최초의 선례라 할 이 사건에서 판단의 준거가 된 판례상의 ‘상식적 권리와 이치(common right and reason)’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바로, 누구도 소송의 재판관이면서 동시에 그 일방 당사자가 될 수 없다는 당연한 사리였다. 문제의 입법은 의료행위를 수행하는 당사자인 왕립의과대학에게 무면허 및 부실 의료행위를 처벌하는 재판관 지위까지 부여했으므로 보통법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것이었다.

공권력의 행사로부터 시민의 자유를 지키는 것을 사명으로 하는 헌법재판관은 그를 임명한 ‘권력’으로부터 중립적인 입장에서 국민의 ‘권리’를 보장하지 않으면 안 된다. 헌법재판에서 공권력의 주체인 국회나 정부나 법원은 사건의 당사자일 뿐이므로 헌법재판관이 그중 어느 편을 대변한다면 이는 재판관이 곧 당사자가 되는 결과로 이어진다. ‘보넘 사건’에서 쿠크 경이 밝힌 보통법의 원칙은 헌법재판 그 자체를 관통하는 대원칙이기도 한 셈이다.

소송 당사자와 관련된 주식을 보유한 채 재판을 맡은 인사가 헌법재판관이 되는 현실에서 헌법재판의 상식적인 이치가 지켜질 리 없다. ‘열두 아이의 아버지이자 열세권 판례집의 저자’ 쿠크 경이 죽음에 이르는 순간에도 폭군 찰스 1세는 그 주거를 뒤져 ‘불온’한 원고를 압수할 것을 명령했다고 한다. 재판하는 법관을 검찰이 수사와 기소로써 협박하고 정권비판 대자보를 두고 경찰이 무단 가택침입을 자행하는 현실에서 시민의 자유가 지켜질 리도 없다. ‘법의 상식’으로부터 멀어져가는 세상이 안타깝고도 두렵게 여겨진다.

/신우철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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