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협, 집회서 무조건적인 법조인 증원에 문제 제기 … 법조유사직역 통폐합 촉구
법전원생 모임들 맞불 집회 “시험과 실무 실력은 무관, 전문성 키우기 힘든 현실”

제8회 변호사시험 합격자 수가 나왔다. 더이상 법조인 증원이 안 된다는 법조계 외침은 외면 받았다.

법무부(장관 박상기)는 지난 26일 제8회 변호사시험 합격자를 발표했다. 합격자 수는 매년 증가하는 추세(3면 표 참조)다. 이번 합격자 수는 1691명이다. 지난번보다 92명 늘어난 수치다. 법전원 정원 대비 합격률은 84.55%에 달한다.

대한변호사협회(협회장 이찬희)는 지난 22일 서초동 변호사회관 앞에서 집회를 열었다. 법조유사직역 문제 해결 전에 변호사 수가 무조건적으로 증원되지 않도록 뜻을 전하기 위해서다. 이날 집회에는 이찬희 협회장을 비롯한 변호사 200여명이 참석했다.

바로 옆에서는 법학전문대학원원우협의회(회장 최상원)와 법조문턱낮추기실천연대(공동대표 이경수)가 변호사시험 합격자 수 통제를 중단하라며 공동으로 집회를 열었다. 법전원생 20여명이 변협 집회 시작 전부터 “변협 집회는 후배들 숨통을 조이기 위한 집회”라면서 목소리를 높였다.

맞불 집회에도 변협은 의연했다. 이찬희 협회장은 “변호사로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상대방 말을 잘 듣는 것”이라면서 법전원생 집회에 먼저 마이크를 넘겼다.

법전원생들은 “시험과 실무가로서 실력은 무관하다”면서 “사법시험 제도 시절 합격자 수를 늘렸을 때도 실력 없는 변호사가 양성됐다는 근거나 검증 자료는 하나도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다양한 꿈이 있어도 변호사시험에만 매몰되어 전문성을 키우기 어려운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이찬희 협회장은 “변호사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마련한 자리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원칙을 바로 세우기 위한 과정”이라면서 “지금 내가 편하고, 당장 합격하고는 것보다 우리 법조계가 바로 서고 법전원이 바로 살기 위해서 변호사시험 합격자 수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라고 일침을 가했다.

해결책으로는 협의체 구성을 제시했다. 변협과 법무부,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 등관련 기관과 법전원 정책을 바로 세우겠다는 취지다.

정부에 법조유사직역 통폐합을 위한 결단을 촉구하기도 했다. 유사직역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법조인 배출 수를 무조건적으로 늘리는 정책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또한 의견을 나누기 위한 심포지엄 개최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찬희 협회장 발언 도중 법전원생들은 삭발식(3면 하단 사진)을 진행하며 “법무부는 약속대로 변호사시험을 자격시험으로 운영하라” 등 구호를 외쳤다.

이에 이찬희 협회장은 “이렇게 번갈아가며 발언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법조인으로서 신뢰감을 상실하는 것”이라면서 “답답한 마음은 알겠지만 개인 이기심을 벗고 전체를 바라보며, 원칙을 찾아가는 데 협조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김용주 전국지방회장협의회 회장도 발언을 이어갔다. 김용주 회장은 “법전원 제도 도입 당시 변호사와 법전원생이 맞불 집회를 여는 일이 있으리라고 누가 생각했을까”라면서 “법전원생들 마음을 몰라서가 아니라 국민 이익이 더 우선돼야 한다는 사실 때문에 집회를 열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국선변호제도를 확대하면서 법원, 검찰이 이를 총괄하도록 하는 등 정부에서 변호사를 죽이고 있다”면서 “정부가 제대로 법조를 이끌어왔다면 우리가 집회를 열지 않았을 것”이라고 정부에 각성을 촉구했다.

현행 국선변호제도는 모두 법원, 검찰이 그 운영을 맡고 있다. 국선변호 범위는 점차 늘어나고 있지만 운영 주체는 변함이 없다. 성폭력·아동학대 피해자를 위한 피해자 국선변호사 선정은 법무부가, 피고인 국선변호인 선정과 국선전담변호사 임면은 법원이, 헌법재판 국선대리인 선정은 헌법재판소가 하고 있다. 지난달에는 법무부 산하 대한법률구조공단이 체포 피의자에 대한 국선변호인 선정 등 업무를 수행토록 하는 법률구조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입법예고하기도 했다.

법전원생들은 김용주 회장 발언 도중에도 “국민 이익을 위한 게 아니라 당신들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울부짖으며 첨예한 대립각을 펼쳤다.

마지막으로 왕미양 변협 사무총장이 성명서를 낭독했다. 변협은 변호사 배출 인원을 결정할 때는 법조유사직역 현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왕미양 사무총장은 “그간 변호사시험 합격자 수 결정에 법조유사직역사 수는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면서 “시급한 유사직역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상황에서 예년 수준 이상으로 법조인 배출 수를 늘려서는 안 된다”고 촉구했다.

이어 “법조유사직역을 통폐합하고 법적 분쟁을 전문적·효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지식과 능력을 갖춘 법조인을 양성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이사장 김순석)도 같은날 성명서를 내 유감을 표했다. 신규 법조인 수를 축소하자는 변협 주장이 국민이 제공 받아야 할 법률서비스 접근권을 침해하는 행위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협의회는 변호사시험 합격률은 응시자 대비 60% 이상이 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전국 25개 법전원 원장 일동은 “신규변호사 취업률이 90% 이상이라는 사실은 신규변호사가 부족하다는 반증”이라면서 “법전원 입구뿐 아니라 출구 또한 확대함으로써 법전원생들에게 희망을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법전원생은 “720점이었던 1기 합격 커트라인 점수가 지난해에는 882점이 됐는데 어디까지 커트라인이 오를지 걱정”이라면서 “법전원 제도 도입 초반에 합격한 법조인들은 기준을 높여야 한다고 하는데 현 상황을 아는지 모르겠다”고 털어놨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도 같은날 교육부장관, 법무부장관에게 의견서를 제출했다. 민변은 변호사시험을 자격시험화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또 5년간 5회만 시험 응시 기회를 주는 현행법은 직업의 자유와 평등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변협은 집회 다음날 대한변협회관 18층 접견실에서 법조문턱낮추기실천연대를 만나(하단 사진) 의견을 다시 한번 경청하고, 합의점 도출을 위해 노력했다.

 

 

 

 

 

 

 

 

 

/임혜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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