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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시선]애써 눈 감는 75의 추억, 44의 현실
정재호 한국일보 기자  |  next8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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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5호] 승인 2019.04.22  09:4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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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추웠다. 2010년 12월 6일 오후 1시경 법무부 청사 주차장에 줄 지어 선 관광버스들 사이를 지나며 항의 집회의 선두를 찾기까지 “춥다 추워. 이런다고 뭐가 바뀔 거라고 진짜 믿는거야?”라는 말만 되새김질했다. 집회 현장엔 A4용지함들을 탑처럼 쌓은 기괴한 풍경과 서른살 언저리의 1기 법전원 학생회 간부들의 심각한 표정만이 무겁게 자리하고 있었다. 탑은 사흘 동안 전국 25개 법전원에서 동맹자퇴 캠페인을 벌여 확보한 1986장의 자퇴서였다.

당시 4년차 기자로, 한창 세상을 삐딱하게만 바라보던 내 눈엔 그들의 집단행동은 ‘답이 안 나오는’ 취재 일정 중 하나였던 듯하다. 진정성과 당위성을 의심치 않으나, 결국 이기지 못할 싸움에 뛰어드는 또 다른 약자들의 모습. 수없이 현장에서 봐온 패배의 익숙한 전조들을 그들만 모른 채 무심히 과천의 공기를 잠식하고 있었다.

그날 이후 지난한 투쟁은 이어졌고 2012년 “1회 변호사시험 합격률을 75%로 한다”는 잠정안이 도출됐다. 75%가 주는 착시로 일견 투쟁이 성공을 거둔 것 같지만 “5년 뒤 변호사시험 자격시험 전환 여부 및 합격률을 재논의한다”는 합의가 지금까지도 이뤄지지 않은 것을 고려하면 사실상 완패다.

4년여 만에 돌아온 서초동에서 우연히 법전원 출신 변호사들을 통해 최근 투쟁사를 전해 들었다. 분모인 입학정원은 그대로 유지돼 매년 불어나는 상황에서 75% 합격률만 고수하다 보니 최근 변호사시험 합격률이 44%까지 떨어졌다는 것. 그로 인해 다양성 확보가 아닌, 변시 학원이 된 법전원 내부 풍토. 그럼에도 변호사시험 자격시험화 재논의를 서두부터 잘라 먹는 기득권 법조 선배들. 암담함 속에 기시감이 밀려왔다. 익히 십여 년 전부터 봐왔던, 겉은 젠틀하나 자신의 이권은 절대 내놓지 않는 내재화된 ‘서초동 스타일’의 권위주의. “75는 이미 잊었고 44는 어쩔 수 없는 시스템의 문제”라는 인식을 애써 숨기고 포장했던 수많은 사시 출신 판검사와 변호사들의 모습이 유유히 스쳐갔다.

최근 법원을 떠나 자신이 가르친 법전원 학생들과 함께 일하기 위해 재야로 나온 한 중견 법조인은 이렇게 일갈했다. “법전원 강의를 나가다 보니, 연수원 기수가 모든 것을 줄짓던, 어찌 보면 간편했던 법조계 서열 논리가 완전히 깨지고 있음을 실감한다. 연수원 최상위권이 법원으로 가고, 야망 있는 상위권이 검찰로 가던 시절은 이제 없다. 어떤 법전원에서도 지망 1순위는 무조건 대형 로펌이다. 시대가 바뀌면 법조인도 바뀌어야 한다. 언제까지 과거만 바라보고 현실을 무시할 것인가.”

75를 잊은 것은 ‘나이 듦’으로 백번 양해해볼 수 있지만 곁에 서 있는 44의 현실까지 끝내 모른 척 한다면, 시대가 법조계를 강제로 구조 조정할 뿐이다. 움직여야 할 시간은 언제나 촉박하다.

/정재호 한국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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