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계의 상징으로 마주하게 되는 상징물은 법과 정의의 여신 디케(Dike)이다.

디케는 그리스어로 ‘법의 뜻’이며 ‘정의’ 또는 ‘정도’를 의미한다고 한다. 디케는 어지러운 땅에 한손엔 저울을, 다른 한손엔 칼을 들고 다니며, 정의를 설파하는 역할을 한다. 싸움이 일어나면 당사자를 저울에 올려놓게 되는데, 바른 인간을 태운 접시는 올라가고, 부정한 인간을 올린 접시는 내려간다. 즉 저울은 영혼의 무게나 죗값을 재는 기준이라고 볼 수 있다.

부정한 자에게는 칼을 내려치는 단죄가 이어진다. 칼은 판정의 결과에 따라 정의를 실현하는 상징으로 이해할 수 있다. 정의의 여신은 눈을 감고 있거나 두건으로 눈을 가리고 심판을 하였는데 이는 공정한 판단을 상징한다. 대법원이나 대한변호사협회에도 정의의 여신 상징물이 있는데, 이 여신상은 칼 대신 법전을 들고 있다.

저울 이야기는 이집트 신화에도 등장한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미라를 매장할 때, 미라와 함께 관속에 사후세계 안내서라고 할 수 있는 ‘사자의 서’를 함께 매장했다. 이 사자의 서 내용 중에는 이집트 신화에 등장하는 아누비스가 저울을 재는 장면이 나온다. 저울의 한쪽에는 망자의 심장을, 그리고 반대쪽에는 정의와 지혜의 여신 마트의 깃털을 올려놓고 무게를 잰다. 선하게 산 사람은 마트의 깃털보다 가벼워 내세의 세계로 들어간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괴물 안무트에게 심장을 먹히게 되고, 영혼은 구천을 떠돌게 된다. 저울을 재는 심판관 아누비스는 검은색 자칼의 머리를 한 반수의 모습으로 보통 묘사된다. 아누비스는 태양신 오시리스와 네프티스(오시리스의 남매이자, 부인인 이시스의 쌍둥이 자매) 사이에서 태어나는데, 죽음의 신으로 저승사자 역할을 한다.

두 신화 모두 옳고 그름, 선과 악을 심판하고, 그에 따른 강력한 응징이 이루어짐을 상징하고 있다. 변호사는 분쟁이 발생한 현장에서 일방의 입장을 대신하는 운명적인 역할을 부여받았다. 결국 심판은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주게 된다-물론 오늘날의 재판이 선악을 구분 짓는 심판은 아니지만 말이다-. 마치 영화에서 절대악에 대항하는 선인이 등장하고, 절대악을 응징한 후, 선이 승리하는 결말을 맺듯.

그러나 과연 현실이 그러한 것일까. 이는 마치 이항대립의 서양 형이상학의 모순된 단면을 보는 듯하다. 오히려 현장에서는 옳고 그름이, 또는 선과 악이 그 분명한 경계를 가를 수 없는 경우들을 우리는 목격한다. 법조인이 알고 있는 진실은 결국 문자 형태로 남은 기록 속 진실일 수밖에 없다. 플라톤은 문자의 기술에 대하여 파르마콘이라고 지적한 바가 있다. 파르마콘은 마약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는데, 약이자 독이라는 것이다. 선은 악이 존재하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다. 안(內)이, 밖(外)이 있기 때문에 있게 되는 것과도 마찬가지 이치이다. 어느 한쪽의 입장에 설 수밖에 없는 것이 변호사의 운명이지만, 옳음 속에도 그름이, 선 속에도 악이 있음을 우리는 늘 경계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이재진 변호사

경기중앙회법무법인 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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