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부민동은 구 부산지방법원과 부산지방검찰청이 있던 역사적 현장이다. 옛 법원 청사에서 10분 거리면 부민산 산중턱 입구에 부산임시수도가 자리하고 있다. 봄날을 맞아 벚꽃이 지고 개나리가 향기를 뿜어내고 있는 그곳은 전쟁의 추억이 보존된 장소다.

6.25 전쟁 중 북한이 썰물과 같이 진격해 와 속수무책으로 밀리던 남한 정부는 이곳에 임시수도정부를 세우고 후일을 도모했다. 전쟁의 패색이 짙은 가운데 부산 임시수도는 새로운 희망을 일구기 위해 온 국민이 함께 마음을 모아 서울수복을 기원하던 곳이었다. 1950년 남한은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을 딛고 일어나 임시수도가 다시 서울로 올라가는 기적을 체험했다. 대한민국의 오랜 역사는 죽음의 문턱에서 다시 살아나는 재생의 힘을 가진 생명력을 지니고 있는 듯하다. 부민동 임시수도의 정원 뜰을 거닐며 100년 전 1919년 3월 1일 이 땅에서 전개된 독립운동이 펼쳐졌을 때 심정은 어떠했을까 사뭇 궁금해졌다.

전 인구의 10%에 이르는 200만명이 시위에 참가했고 8000여명이 사망했던 거국적인 독립의 물결 속에서 재생의 가능성은 과연 몇 %로 계측하고 있었을까. 3.1 운동에 참여하고 앞서 일본에서 2.8독립선언서를 작성했던 춘원 이광수는 조선의 재생을 불가능한 것으로 판단한 듯하다.

소설 ‘재생’의 두 연인 신봉구와 김순영은 3.1 운동에 가담한 죄목으로 수감된다. 2년 6개월 동안 경성교도소에 투옥된 봉구가 고통의 시간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순영 때문이었다. 주변의 사랑을 한 몸에 받을 정도로 빼어난 미인이었던 순영. 봉구는 순영을 사랑했기 때문에 비로소 조선을 사랑하게 됐다. 봉구에게 순영은 조선인으로서 정체성을 찾게 해준 존재다. 그런데 3.1 운동으로 투옥되고 경성감옥소에서 출소한 봉구는 순영이 부산 동래온천에서 백윤희의 첩이 되었다는 소문을 들었다. 둘은 재회했지만 다시 헤어지고, 봉구는 일하는 가겟집 주인을 살해했다는 누명으로 재판에 회부되었는데 증인으로 선 순영은 처음 무죄로 진술한 것을 세간의 이목을 두려워해 번복한다. 살인 진범이 체포되고 무죄 석방된 봉구는 그에게 다시 손을 내미는 순영을 받아주지 않았고 끝내 그녀는 목숨을 던져버린다. 순영은 봉구를 배신했고, 봉구는 그녀를 용서하지 않았으며 용서받지 못한 순영은 죽음을 선택했다. 순영의 죽음과 함께 봉구 가슴속의 조선은 죽음을 맞이한다. 춘원은 순영의 죽음을 통해 조선의 재생이 불가능한 것으로 예측했다.

그의 예측과 달리 100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대한민국은 재생을 거듭하는 국가로 도약하고 있다. 소설 ‘재생’은 불가능한 현실 속에서도 재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알려준다. 소설 ‘재생’과 함께 다시 걸어보는 부산 임시수도에는 그곳에 남겨진 역사적 흔적들 속에 통일을 향한 재생을 준비하라는 글귀가 새겨진 듯하다.

 

 

/박상흠 변호사·부산회

mose2020@daum.net

저작권자 © 법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