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 수사 과정에서 판사들은 많은 ‘관행’을 지적했다. 밤새 이어지는 조사에서 열번이고 스무번이고 반복해서 묻는 질문, 영장과 관계없이 통째로 훑는 압수수색, 포토라인에서의 침울한 표정. 맞는 지적들이 많았지만 하필 이 시점에, 왜 이제서야 전·현직 법관들이 그런 깨달음을 얻었는지, 비로소 자신들의 일이 된 뒤에야 절감했다는 데 대한 비판이 더 컸다. 분명 맞는 말인데도 타이밍과 화자에 묻힌 아쉬운 대목들도 있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의 재판 과정에서도 덕분에 새삼스러운 사실들을 자주 깨닫는다.

지난 2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은 현직 판사의 증인신문을 시작하기 직전 “형사소송규칙 제74·제75조에 포괄적이고 막연한 질문, 위협적이거나 모욕적 질문, 유도신문 등을 금지하고 있다”면서 재판장이 적절히 소송지휘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판에서 주로 ‘셀프 변론’을 많이 하는 임 전 차장은 지난달 26일 재판에선 A4용지 17페이지 분량의 서면을 써왔다면서 “토요일에 손으로 쓴 거라 일단 구두로 말씀드리고 변호인이 워드프로세스로 다시 정리해서 제출하겠다”고 말했다. 그 전 기일엔 검찰의 방대한 수사기록을 열람하기 어렵다며 “(구치소에서) 저녁 9시에 불이 꺼진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앞서 2월 26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도 보석심문에서 “검찰 수사기록이 20만 페이지가 넘는데 책 몇권을 두기도 어려운 좁은 공간에서 아마 100분의 1도 제대로 검토 못할 것”이라고 호소했다.

좁은 방에서 몸을 숙이고 기록을 검토했을 모습을 떠올리다 문득 궁금해졌다. 아마 많은 법관들이 정돈되지 않은 손글씨로 휘갈겨 쓴 피고인들의 탄원서를 읽고 눈살을 찌푸린 경험이 있지 않았을까. 툭하면 기록을 다 못봤다며 진행을 미루는 피고인들에게 짜증을 내지 않았을까. 추측성 질문이 반복되는 증인신문, 혐의와 관련 없는 배경설명을 망라한 공소장을 문제 삼는 피고인들의 주장을 얼마나 귀담아 들어줬을까.

한때 사법부의 최정점에 있던 인사들이 피고인으로 선 법정은 형사소송법은 물론 형사소송규칙, 각종 판례들까지 조목조목 등장해 마치 강단처럼도 느껴진다. 어려운 법적 지식이 낭독되는 가운데 때때로 “압수수색 때 검사가 예의를 베풀며 (경계)심리를 무장 해제시켰다. 거기에 속은 게 후회된다”거나 “또 다른 검사는 ‘법조계 대 선배가 거짓말하면 곤란하다’며 심리적으로 압박하고 모욕적 언사를 해 자존심이 상했다”는 지극히 감정적인 울분도 터져 나온다. 인생이 걸린 재판에서 자신을 지키기가 그토록 어렵다는 것을, 그 자리에 선 뒤에야 보였을 거라고는 믿고 싶지 않다. 다만 이제라도 새삼 보여지는 많은 것들이 시점과 화자에 관계 없이 무겁게 받아들여질 필요는 있어 보인다.

 

 

/허백윤 서울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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