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3월 31일 오전 2시를 기준으로 스위스에도 흔히 ‘서머타임’이라 칭하는 일광절약시간제가 실시되었다. 일조시간이 늘어남에 따라 야외활동 가능시간도 자연스레 길어진다. 제네바(République Canton de Genèva, 州) 시민들과 거주자들이 애용하는 야외장소는 단연 제네바를 좌우로 나누며 유유히 흘러가는 레만(Leman) 호수이다. 특히 서머타임기간에는 주말뿐만 아니라 평일 밤까지도 가족, 연인, 친구, 반려견과 함께 혹은 홀로라도 호숫가를 즐기려는 사람들로 북적댄다.

레만 호수 전체 면적(580㎢) 중 1.8%(10.6㎢)만이 제네바에 포함되고 제네바와 맞닿은 호수 길이는 약 29㎞라고 한다. 이중 16㎞의 해안은 고가주택, 외교공관, 레스토랑 등 민간 및 외국정부 소유지가 차지하고 있어 접근이 불가하다. 따라서 일반 시민들은 나머지 13㎞의 호숫가 접근만 가능하다. 문제는 200여개 유수 국제기구와 민간단체 등이 소재한 제네바의 거주인구 및 관광객 수는 매년 증가 추세인데 기후변화의 영향인지 제네바의 여름도 매년 뜨거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여름철 호숫가를 찾는 사람은 급격히 늘어나는 반면 13㎞로 한정된 공공장소는 협소하고 실제로 입욕(入浴) 가능한 곳의 경우 도떼기시장을 방불케 한다.

제네바 일간지 ‘트리뷴드제네브(Tribune de Genéve)’ 기사에 따르면 제네바 주정부는 이러한 기후 및 인구 변화추이 등을 감안, 작년부터 호숫가 3개 지역(Cologny, Eaux-vives, Bellevue)에 휴양 해변 조성을 포함한 개발사업을 진행 중이라고 한다. 실제로 콜로니(Cologny) 지역 호숫가에는 중장비를 동원한 공사가 1년 넘게 지속되고 있다. 문득 ‘인간의 휴양 욕망 때문에 레만 호수가 아파하는 것은 아닐까? 충분한 사전 협의와 환경조사가 진행되었을까?’라는 의구심이 들었다.

최근 필자는 약 40년간 레만 호수정책을 담당 중인 제네바 주정부 책임자로부터 이에 대한 답을 들을 수 있었다. 생물학 전공자인 그는 우선 과거 60~70년대 심각한 수질오염으로 인해 레만 호수는 해수욕조차 금지되었으나, 이후 산업폐수 규제 등 당국의 강력한 수질 개선정책 이행에 따라 현재와 같은 깨끗한 수질이 회복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 호숫가에서 진행 중인 개발사업의 경우 2007년 이미 기본 사업계획이 세워졌음에도 타당성 조사, 수질환경 전문가 및 기관들과의 연구 진행, 친환경 설계, 예산의 점진적 확보, 지자체 및 주민 대상 공청회 개최 등 10년 이상의 오랜 검토과정을 거친 후 작년에 착공되었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세계자연기금(WWF) 등 환경보호단체들의 우려와 이에 대한 과학적 조사결과를 토대로 사업대상지와 규모도 초기 계획보다 상당히 축소되었고, 갈대숲 조성 등 환경적 요소를 설계에 보다 반영하였다고 덧붙였다.

자연환경은 작은 부분이라도 한번 손대면 회복이 쉽지 않다. 우리는 과거에, 아마 지금도 충분한 검토 없이 졸속 진행된 사업들로 인해 대한민국의 산수(山水)에 남겨진 상처를 자주 발견한다.

제네바의 느린 행정과 무관치 않더라도 공기 1~2년의 호숫가 개발사업 착수를 위해 제네바가 10년 이상 ‘느림의 미학’을 보여준 것은 주목할 점이라 생각한다. 오랜 고민의 과정이야말로 자연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가 아닐까 싶다.

 

 

/임성균 주제네바대표부 2등서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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