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 처음으로 본 소장과 답변서에는 원고와 피고 간 양보 없는 공방이 이어진다. 비록 소액사건이지만 한치의 틈도 보이지 않으려는 당사자 간 수싸움에서 긴장감이 느껴진다. 학업을 마치고 실무에서 내가 접하게 될 사건들의 면면이 이러한 모습이리라 짐작하게 된다. 소송관련 서류를 모두 검토한 나는 당사자 간 주장을 요약하고 관련 쟁점들과 사건이 전개될 방향에 대한 의견서를 작성해 조정위원인 교수님께 검토를 받는다. 이같은 사건을 수없이 접했을 교수님께선 직접 의견서 문장과 논리구조를 다듬어주신다. 사건 당사자들을 학교로 모시고 원만한 조정을 시도한 결과, 원고가 채무의 변제기를 유예하는 것으로 합의된다.

지금까지 성균관대 법전원 리걸클리닉 단원으로 참여한 조정사건의 진행 과정이었다. 리걸클리닉에선 서울중앙지법에서 조정으로 회부된 사건들을 담당하는데, 학생들의 실무감각을 배양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교과서 활자로 등장하는 원고 갑, 피고 을이 아닌 실제 원고와 피고 간 분쟁을 직접 조정하는 경험은 법전원생으로서 특별한 기회다. 연애를 글로만 배워서는 알 수 없다는 말이 있듯, 강의실에서 배운 법지식은 추상적인 개념으로 간신히 머릿속에 남는다. 반면, 어려웠던 법적 개념이 이웃 간 분쟁에서 실제로 적용되는 모습은 가장 효과적으로 이해의 깊이를 더해준다. 또한, 오랜 경력의 교수님들로부터 직접 서면 지도를 받는 것은 인턴 활동이나 향후 실무를 담당할 때 필요한 기초실력과 자신감의 원천이 될 수 있다.

비단 지식적인 측면에서만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다. 로스쿨에서 치열한 경쟁을 헤쳐가다 보면 공부에 매몰된 나머지 정작 공부하는 동기나 이유를 잊을 때가 있다. 실제로 조정사건을 진행하면서 내가 공부한 내용들이 분쟁 해결의 열쇠가 되는 것을 경험하면 고된 공부의 보람을 느끼게 된다. 또한, 학교폭력 피해학생의 어머니, 동업자로부터 채무를 떼일 위기에 있는 자영업자 등 법적인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이웃들이 많다는 것을 직접 보면서, 법전원 입학 자기소개서에 적었던 ‘공익’이라는 가치에 대해 다시금 생각할 기회도 가지게 된다.

법전원에서의 3년은 한명의 법조인이 탄생하기에 빠듯한 시간이란 걸 체감하는 중이다. 학기 중에 다른 사람들의 사건을 조정하고, 상담하기 위해 시간을 쓰는 것은 분명 신경이 쓰이는 일이다. 하지만 직접 사건 서류를 마주하고, 의견서를 작성해보며 사건 당사자들을 만나는 경험은 활자로는 배울 수 없는 것들을 알려준다. 다른 법전원생들도 리걸클리닉이라는 좋은 기회를 접할 수 있다면 실무와 이론을 겸한 법률가 양성이라는 법전원 설립취지에 더 가까워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민우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9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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