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목 엔지니어링 회사에 사내변호사로 입사한 지도 1년이 지났다. 업계 특성상 회사의 직원들은 대다수 남자들이고, 사내 분위기는 공과대학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하다. 송무를 할 때는 옆방 또래 여변들과 점심을 먹으면서 사건 얘기도 하고 수다도 떠는 소소한 재미가 있었는데, 회사에 들어오니 환경이 바뀌고 인생의 낙이 하나 줄어들어 내심 아쉬웠다. 수면시간을 제외하고 하루의 1/2를 노동현장에서 보내는 현대인으로서는 동료와의 유대 또한 중요한 요소인 것 같다.

회사의 1인 사내변호사는 소송수행 및 관리, 계약서 검토, 사규 개정, 의사결정을 요하는 각종 미팅 참석 등 다양한 업무 수행을 요구받는다. 그 중 비중이 가장 큰 업무는 하루에 적게는 두건, 많게는 다섯건까지 의뢰가 들어오는 사업부서 자문이다. 자문은 건설기술진흥법, 건설산업기본법, 계약법, 하도급법 등 관련 법령의 해석·적용으로 비교적 간단히 답변할 수 있는 건부터 며칠을 다각도로 검토해야 하는 대형 EPC사업의 수주 건까지 스펙트럼이 다양하다.

며칠 전에 재미있는 일이 있었다. 오전에 사업부서에서 이사님 한분이 자문을 부탁드린다며 찾아왔다. 발주처가 국가나 지자체인 경우에는 거의 발생하지 않지만, 민자사업에 참여하였을 경우에는 종종 있는 미수금 문제였다. 전년도 가을 성과품을 납품하고, 겨울에 기성금을 독촉해 반액 정도를 지급받았는데, 나머지는 올해 초까지만 기다려 달라고 해서 기다렸더니 발주처 사장이 갑자기 수신거부를 했다는 것이다. 내규상 발주처로부터 지급받은 기성금 비율대로 하도급대금을 지급하게 되어 있어 발주처로부터 돈을 받으면 빨리 하도급대금 처리도 해줘야 하는데, 담당자는 큰 회사 대표이사가 사회적 지위에 걸맞지 않는 비상식적인 태도를 보인다며 화가 나 있었다.

미수금 문제야 변호사 입장에서는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빈번한 일이므로 사건의 경중을 따지자면 실은 상중하 중에 하에 해당하는 건이다. 살펴보니 발주처의 자력은 충분했으나, 감정적인 문제로 비화된 상황인 것으로 짐작됐다. 다만 줄곧 통화로만 지급독촉을 해온 지라, 잔금과 지급기일을 명시한 내용증명을 한 차례 보낸 후 회신이 없으면 부동산 가압류에 들어가기로 했다. 스트레스를 받은 담당자를 달래가며 집행까지의 절차를 설명한 뒤, 절차 진행상 조금 기다리셔야 한다고 말씀드렸다. 그런데 미팅이 끝날 때쯤, 담당자가 변호사님 말씀을 들으니 마음이 풀린다며 나에게 한 가지 특별한 부탁을 해왔다. 책상 앞에 붙여놓고 마음을 다잡도록 A4용지에 자필로 코멘트를 써달라는 것이다.

그 자리에서 펜을 꺼내 ‘이 건은 일상적인 일입니다. 내용증명이 한번 더 나가야 가압류에 들어갈 수 있으니 한달간 마음을 편하게 가지세요. 화이팅!’이라고 써드렸다. 어려울 것 없는 사소한 친절이지만, 담당자분은 종이를 받아들고 한결 편안해진 얼굴로 돌아갔다. 그에게 정말 필요했던 건 자신이 현재 잘 하고 있다는 인정에 덧붙인 한 마디 응원의 말이 아니었을까.

 

 

/주하윤 변호사·서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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