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협, 법무부에 입법예고된 법률구조법 일부개정법률안 전면 재검토 촉구
변론 주체 독립성 강조 … 살인 등 중범죄자 위한 국민 혈세 사용도 논란

심판 혹은 상대편이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경기가 있다면, 모든 관객은 공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법원 또는 검찰이 ‘국선’변호를 누구에게 맡길지 정하는 문제도 마찬가지다. 법조계에서는 계속 공정성에 문제를 제기했지만 또 한번 검찰 측이 국선변호인을 선정하게 되는 법안이 나와 공분을 샀다.

대한변호사협회(협회장 이찬희)는 지난 4일 전국지방변호사회장협의회(회장 김용주)와의 공동 성명서를 통해 “국선변호인 제도는 공정성 확보가 생명”이라면서 “법무부가 지난달 29일 입법예고한 ‘법률구조법 일부개정법률안(이하 ‘개정안’)’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못박았다.

개정안에 따르면 사형·무기 또는 단기 3년 이상 징역이나 금고에 해당하는 사건으로 체포된 피의자는 국선변호인을 선임할 수 있다. 수사단계부터 인권침해를 예방하는 동시에 피의자 방어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조치다. 그간 피의자는 수사 단계에서는 국선변호인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

문제는 운영 기관이다. 개정안에서는 대한법률구조공단에 피의자국선변호인 운영을 맡기고 있다. 검찰청은 법무부 소속, 대한법률구조공단은 법무부 산하 기관이다. 법무부장관은 대한법률구조공단 이사장, 이사, 감사 임명권과 지도감독권을 가지고 있으며, 필요한 경우 사업에 관한 지시나 명령을 할 수 있다. 개정안에 따르면 피의자 변호와 기소를 모두 법무부가 담당하게 되는 셈이다.

법무부는 성폭력·아동학대 피해자를 위한 피해자 국선변호사 선정도 맡고 있다. 가해자로 의심되는 피의자에 대한 국선변호인 제도를 같은 기관에서 운영하게 되면 변론의 공정성이 확보되지 않을 위험도 높아질 것으로 풀이된다.

다른 국선변호도 마찬가지다. 국선변호를 맡을 변호사를 선정하는 기관 중 변호사단체는 없다. 피고인 국선변호인 선정권과 국선전담변호사 임면권은 법원이, 헌법재판 국선대리인 선정권은 헌법재판소가 갖고 있다.

피의자국선변호관리위원회를 설치하더라도 법무부 시야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위원회를 대한법률구조공단에 설치할 뿐 아니라, 변협 협회장이 추천할 수 있는 위원 수는 정원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다른 위원은 법무부장관과 대법원장이 추천하도록 돼있다.

변협은 “개정안 취지에는 공감하나 변론 주체가 수사기관과 법원으로부터 독립해야 한다”면서 “이런 제도에서는 국선변호인이 법원 눈치를 보지 않고 피고인 이익을 위해 소신껏 변론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이어 “국선변호인이 무죄를 주장할 여지가 있어도 법원이 양형 변론만을 종용하면 압박을 느낄 것”이라면서 “특히 재판장 평가가 재임용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는 국선전담변호사는 더욱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최근 법조시장이 불황을 겪으며 많은 변호사가 국선변호를 원하고 있다. 국선전담변호사 경쟁률은 2010년 4.8:1에서 2015년에는 8.9:1로 늘었다. 특히 초임 변호사 사이에서 인기다. 수임 경쟁 없이 고정 보수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국선전담변호사는 계약기간 2년이 지나면 재판장 평가에 따라 재임용이 결정된다.

변협은 모든 국선변호제도 운영을 변협이 담당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지난달 29일 울산에서 개최된 ‘제31차 전국지방변호사회장협의회’에서도 국선변호제도 운영·관리 주체를 변협 내지 제3의 중립적 협의체에서 해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다. 재판은 법원, 수사는 검찰, 변론은 변호사가 각각 독립적으로 진행해야 국민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보장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변협은 회원 분담금과 등록비 등으로 운영되는 단체다. 반면 대한법률구조공단은 법률구조법에 따라 정부에서 출연금과 보조금을 지급 받는다.

법조경력 20년인 한 변호사는 “피의자국선변호인 제도 취지는 인정하지만 운영 주체로 인해 공정성이 훼손되는 상황”이라며 “엄중한 현실 속에서 회원 모두 속앓이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의정부에서 근무하는 한 변호사는 “제도가 도입되더라도 변협이나 14개 지방회가 운영을 맡아야 한다”면서 “이와 더불어 변호 수당 현실화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법무부는 지난해 예산 부족을 이유로 피해자 국선변호사 보수를 일괄 삭감하기도 했다. 당시 변협은 “적은 보수에도 불구하고 피해자를 구조한다는 사명감으로 일해 온 노력을 폄하하는 일방적인 결정”이라고 반발했다.

수사단계에서부터 변호인을 붙여줌으로써 ‘세금 낭비’라는 지적도 나온다. 가해자로 의심되는 피의자를 돕기 위해서라는 취지에 공감하기 어려울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변협도 지난해 제도 도입에 우려를 표하며 “국민 혈세로 성폭력범죄자 등 중범죄자에게 법률구조를 하면 국민이 동의할지 의문”이라면서 “국민적 여론수렴 과정을 거쳐 그 대상자를 엄격하게 한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경기도민 A씨는 “선량한 시민이 피땀 흘려 번 돈을 범죄자를 돕기 위해 사용해서는 안 된다”면서 “지원 대상을 경제적 취약계층으로만 해야 한다”고 토로했다.

변협은 2016년 국선변호사 등 현행 법률구조제도를 통합한 법률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법률안은 독립적인 사법지원센터를 설립하고 사법지원대상자 선정 요건 심사를 강화하는 내용으로 구성됐다.

개정안에 대한 의견은 내달 8일까지 제출할 수 있다. 온라인으로 참여할 개인 또는 기관·단체는 국민참여입법센터(opinion.lawmaking.go.kr)에 의견을 제출하면 된다. 우편으로 의견을 보낼 경우에는 찬성 또는 반대 의견과 이유, 제출자 이름주소전화번호를 적어 법무부장관(경기도 과천시 관문로 47 정부과천청사 법무부 1동 813호)에게 제출하면 된다.

 

 

/임혜령 기자

저작권자 © 법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