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시스티나 성당의 냄새가 어떤지는 모를걸? 한 번도 그 성당의 아름다운 천장화를 본 적이 없을 테니까.”

영화 굿 윌 헌팅(Good Will Hunting)의 한 대목이다. 명배우 로빈 윌리엄스와 아직 앳된 맷 데이먼을 보는 것만으로도 근사한 이 장면에서 극 중 교수는 한번도 보스턴을 떠난 적이 없는 주인공에게 미켈란젤로를 들며 책이 줄 수 없는 경험이 있음을 깨닫게 한다.

여행도 그러한 듯하다. 이제는 각종 매체의 여행 프로그램을 통해 여러 장소와 나라를 가보지 않고서도 마치 다녀온 것처럼 알게 된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경험자처럼 말할 수 있을지 몰라도 그곳의 냄새, 현지의 풍광은 자기 몸에 기억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내게 여행은 경험이 그것의 전부이다.

독일 아우토반을 며칠간 달려보면 속도 무제한의 고속도로가 왜 유독 독일에서 가능했고 이것이 직선의 도로만 갖춘다고 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마찬가지로 알프스를 수차례 넘다 보면 산악에 갇혀 있던 스위스인들이 왜 철도로 이를 탈출해야 했고, 어떻게 그것을 실현했는지를 실감할 수 있다.

스위스 산악마을 뮈렌의 벤치에서 융프라우와 그 주변 알프스 고봉의 경관을 멍하니 바라본 시간이 있었다. 절경을 품고 싶어 사진을 찍다 이내 그만두었다. 아무리 잘 찍은 사진도 그 느낌을 담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듬해 그 벤치에 다시 앉는데 순간 뭉클했다. 사라진 줄 알았던 작년의 그 감동이 온전히 살아나는 것이다. 몸에 기억으로 자리 잡고 있었나 보다. 해를 달리해 마주한 절경이 눈에 선하지만 직접 보는 것 외에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이를 설명하자면 더 진부해질 것이다.

봄이다. 어느 작가의 말처럼 시를 쓰지는 못해도 발걸음을 옮길 만하다. 일단 가보면 안다. 그리고 눈에 넣고 냄새 맡고 만져보자. 윌 헌팅이 그랬듯이 말이다.

 

/이희관 변호사

서울회·법무법인 자우

 

저작권자 © 법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