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재판의 전자소송화는 법조계의 해묵은 숙제이자, 당면한 사법불신 해소를 위해서도 시급하고 필수적인 개혁조치다. 즉 형사재판 분야는 민사, 가사, 파산, 특허 분야와 달리 ‘낙후된 종이소송’이 계속되고 있으며, 그로 인해 형사변호인은 수사기록 열람·복사에 막대한 시간·비용 투입이 불가피한 현실이다. 이처럼 형사재판의 출발 단계부터 피고인 방어권 행사에 불리함을 안고 변론에 착수하는 상황에서는 헌법상 기본권인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는 유명무실해 지기 십상이다.

우리나라 민사재판은 일찍이 세계적으로 가장 탁월한 전자소송을 구축하여 재판 능률과 국민의 사법신뢰가 획기적으로 개선되었다. 그 덕택에 투명성과 신속성, 청렴성 등 모든 분야에서 OECD 내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반면에 형사재판의 전자소송화는 국민의 인권보장 강화를 위해 꼭 필요한 사업인데도 지난 10여년간 방치되어 왔다.

그동안 형사사법 정보통신망 구축은 극소수 전문가를 위한 사업이었고 국민만족도는 거의 반비례해온 느낌도 든다. 안타까운 현실이었다. 경찰-검찰-법원으로 연결되는 형사사법시스템을 첨단 정보통신망으로 묶기 위해 대규모 예산이 투입되었지만, 정작 대국민 법률서비스의 핵심사업인 ‘형사 전자소송 도입’은 관계기관의 무관심과 비협조로 우선순위에서 밀려 왔다. 더 이상 형사재판의 전자소송화를 미루면 안 된다. 인공지능의 발달과 5G 전송망을 바탕으로 범세계적인 4차산업혁명을 앞두고 있는 마당에, 원시적인 종이소송을 고집하면 결국 ‘깜깜이 재판(blind trial)’의 한계를 극복하기 어렵다.

다행히 지난해 7월 대법원에서 발표한 ‘형사재판 전자소송 계획안’에 따르면, 2019년 초반 서울 소재 지방법원과 서울고등법원 중 시범재판부에서 먼저 시범 도입하고, 2020년부터 전면 실시한다고 한다. 따라서 조만간 일부 재판부를 중심으로 전자소송을 이용한 형사재판이 개시되고, 모니터링을 통한 개선작업을 거쳐 내년부터는 전국적으로 본격 시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것은 변호사만이 아니라, 일반 국민들로서도 반가운 소식이다. 대한변호사협회가 대법원의 언론보도 당일에 환영 성명서를 발표하고, 2018년도 대한변협신문 10대 뉴스 가운데 여섯 번째 주요 뉴스로 꼽힌 것은 이러한 법조계의 절박한 인식이 반영된 것이다.

전자소송은 소수의 변호사만을 위한 특별한 시스템이 아니다. 우리가 지금 애용하고 있는 전자소송은, 아직도 진화를 거듭하고 있는 미완의 시스템이지만, 그래도 세계 최초의 독창적 시스템이며, 전세계 사법부의 귀감이 되고 있다. 투명성, 신속성, 기록보존성, 열람의 편의성 등 수많은 측면에서 ‘종이소송’ 시대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장점을 갖고 있다.

따라서 장차 보안성, 신뢰성, 안정성이 더욱 확보되는 시스템이 되려면, 개발주체인 법원에게 시스템의 미완을 탓하기 이전에, 이용자들이 스스로 시스템을 이해하고, 매뉴얼 구석구석을 손수 사용해 보면서 익히려는 학습노력이 중요하다. 그래서 형사재판 전자소송 발전을 위해서는 변협 차원에서 법원-검찰 3자간 실무협의체를 구성해서 구체적 방안을 토의하고, 적극 반영해 나갈 필요가 있다. 특히 형사소송법과의 정합성, 예컨대 검·경조서의 디지털 pdf파일 증거능력 특칙 등에 대한 토론과 입법화를 서둘러야 한다.

전자소송을 통해서 공판준비절차가 내실화되어 당사자 무기대등원칙의 실질적 보장을 도모할 수 있고, 정식재판 사건의 충실한 심리 측면에서도 획기적인 개선 효과가 예상된다. 장기적으로는 직업법관 제도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한 배심제도와의 접목도 시도해 볼 만하다. 그래서 전산개발 책임자들은 ‘완전한 시스템을 향한 미완성’이라는 각오로 계속 개선해 나가야 한다.

일단 형사재판의 전자소송을 시작하게 되면, 그런 법조계의 창의적 노력이 집단지성으로 모이게 될 것이며, 법원-검찰-경찰이 이미 보유한 첨단 정보통신기술을 적용하여 대국민 법률서비스가 획기적으로 업그레이드 될 수 있다. 더욱이 검찰-경찰의 해묵은 수사권 갈등 문제도 미래지향적으로 수렴 개선하는 긍정적 효과도 기대된다.

만시지탄이기는 하지만, 형사재판의 전자소송화를 통하여 ‘종이소송’을 탈피하게 되면 사법신뢰 회복과 인권 향상에 중요한 원동력이 될 것이다. 대한민국 사법부와 검찰의 신뢰도를 단숨에 끌어올리고, 피고인 방어권 보장도 크게 강화될 ‘형사 전자소송 시대’의 개막을 진심으로 환영한다. 부디 적법절차와 증거재판주의 구현을 위한 형사재판의 특성을 잘 고려해서 최상의 시스템을 개발해 줄 것을 부탁드리며, 조속한 정착을 기대한다.

 

/정진섭 변호사(서울회·법률사무소 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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