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연말 연예계를 강타했던 ‘빚투’가 다시 한번 이슈가 됐다. 많은 이들은 부모의 채무회피에도 불구하고 성공가도를 달리는 연예인 자녀들을 보며 각자의 심정적 정의를 비난의 댓글로 승화시켰다. 문득 상속포기, 한정승인 업무를 진행하다 때때로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변호사님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디에 있습니까.” 새삼 마음이 무거워진다.

모든 제도는 대립되는 이해관계 간 조정의 결과다. 상속포기, 한정승인 영역에 있어서는 채권자와 상속인의 이익이 대립되는데, 상속인의 입장에서는 자기의 행위로 인해 발생한 것도 아닌 채무를 부담할 이유가 없는 것이고, 채권자의 입장에서는 그렇다면 자기의 채무를 어디에서 변제받아야 하는지 억울함이 있을 것이다. 양쪽 모두의 입장이 이해되는 어려운 문제이다.

이러한 고민은 고대 로마시대에도 있었던 것 같다. 고대 로마에서는 최초 당연상속인이 상속을 포기할 수 없다고 규정했는데, 시대가 흐르면서 그로 인한 불합리함을 시정하기 위해 상속거절권을 인정했다고 한다.

망자의 채무에 대한 승계를 강제할 때 공동체를 이탈하는 사람들이 늘어나 공동체가 붕괴될 것을 우려한 정책적인 선택은 아니었을까.

이후 근대에 이르러 자기책임의 원칙이 확립되면서 피상속인의 거래행위로 인한 책임을 상속인에게 강제할 수 없다는 개념이 더욱 확고해졌을 것이다. 개인이 공동체의 부속품 정도로 여겨지던 시절, 하나의 인간은 가족 또는 가문을 떠나서 존재할 수 없었고, 선대의 과오는 당연히 후손의 부담이 돼야 했으며, 누군가는 망자의 채무로 인해 자유를 박탈당해야 했다. 상속포기, 한정승인 제도의 확립이야말로 개인의 자유로운 인격을 확립하는 출발점이 아니었을까.

상속채무로부터 상속인들을 자유롭게 하는 일이야 말로, 공동체를 유지하고 개인의 자유를 확보하는 법률가의 역할이 아닐까 생각하며 무거워진 마음을 달래본다.

 

/허한욱 변호사[서울회·법무법인(유한) 태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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