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보다는 70여 시간 4000km를 육로로 달려 온 김정은에게 더욱 큰 실망과 좌절이었을 것이다.

빈 손으로 귀국하는 김정은은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완전 비핵화를 요구하는 미국을 상대로 국내 체제안전과 경제제재의 해제를 보장받을 수 있는 해법, 그것도 협상을 서두르지 않는 미국으로 하여금 협상 타결을 서두르게 만들 수 있는 해법을 강구할 것은 당연하겠지만, 아마도 무엇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한번쯤은 생각해 볼 것 같다.

변호사로서 수많은 국내외 협상과 변론을 이끌어 왔던 나의 관점에서 보면 북한은 이번 협상 준비과정에서 Devil’s Advocate(악마의 대변인)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한 것 같다. Devil’s Advocate란 천주교에서 이적을 행한 사람을 성인으로 공인하기 전에 교회법 전문가로 하여금 반대편에 서서 이적의 증거를 탄핵하고 반론을 제출하게 함으로써 오류를 피하고자 했던 제도인데, 김정은도 누군가로 하여금 미국 편에 서서 자신에게 가장 아픈 질문을 던지며 공격하도록 함으로써 충분히 대비했었어야 했다. 그렇게 했었더라면 미국이 핵시설 자료를 제시했을 때에 적어도 놀라고 당황하는 모습을 노출하는 것만은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우리나라 경제발전 주역으로 추앙받는 박정희에게도 미국으로부터 받은 좌절과 수모의 순간이 없지 않았다. 1961년 11월 박정희 국가재건회의 의장은 외국 민항기와 미군 수송기를 빌려 타고 4번의 중간기착을 거쳐 사흘 만에 워싱턴에 도착해서 케네디 대통령을 만났는데 베트남 파병까지 제안했음에도 불구하고 쿠데타로 민주정부를 전복시켰다는 이유로 경제지원을 거절당하고 돌아오게 된다. 당시 1인당 국민소득 82불인 약소국의 지도자로서 박정희가 느꼈을 비애와 좌절감은 어떠했을까?

그러나 그 후 박정희는 같은 분단국가인 서독으로 눈을 돌려 God’s Advocate(신의 대변인)를 만나게 된다. 당시 통역관이셨던 백영훈 박사님의 증언에 의하면, 1964년 12월 서독을 방문한 박정희 대통령은 함보른 탄광에 가서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을 만나 애국가를 함께 부르다 목이 메어 울음바다가 된 가운데 후손들에게는 가난을 물려주지 말자는 눈물의 결의를 한다. 이후 에르하르트 독일 총리의 권유로 독일의 울창한 삼림, 아우토반과 폭스바겐 자동차 공장과 제철소 등을 둘러보며 경제개발 전략을 조언 받게 되는데 이것이 삼림녹화, 경부고속도로, 자동차 등 제조업 및 포항제철소 등을 주축으로 하는 우리나라 경제발전의 기틀이 됐다고 한다.

그러나 인간의 영혼을 부정하는 유물론적 공산주의 국가 지구상 유일한 3대 세습체제 지도자인 김정은에게 God’s Advocate를 만나는 길이 열릴 것인가?

 

 

/박수만 변호사·서울회(대우해양조선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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