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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풍당당 여변]대한민국에서 학부모로 산다는 것
진형혜 변호사  |  jinhh@maestla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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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9호] 승인 2019.03.11  09:3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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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제 교복 바지 줄이셨어요? 운동복은 어딨어요?” “엄마, 내일 입학식 오실 거예요? 교복에 명찰 달아야 해요.” “엄마, 새 교과서에 이름 써주세요. 준비물에도요.”

세 아이들이 제각기 숨넘어가게 불러대는 엄마 소리에 정신이 하나도 없다. 올해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큰아이, 중학교에 진학하는 둘째 입학식, 신학기를 맞은 셋째 개학일까지 겹치는 3월 첫 월요일을 하루 앞둔 오후. 평화로워야 할 주말은 온데 간데 없고 그야말로 불난 호떡집이다.

큰 아이 고등학교 설명회가 있던 2월 어느 날. 학부모 대상으로 하는 학교 설명회가 평일 오후에, 그것도 장장 3시간에 걸쳐 이뤄진다는 안내문에 눈을 의심했다. 학부모가 학교를 다니는 것도 아닌데 학부모 학교 설명회를 평일 오후에 그것도 3시간이나 한다고?

그러나 설명회가 시작되기 한참 전부터 강당을 가득 메운 학부모들을 보며, 이후 단상에 선 선생님의 설명에 토씨 한마디라도 놓칠세라 받아 적고, PT 자료를 연신 사진에 담는 열의에 찬(아니 결기 가득한) 그 모습을 보며 내가 얼마나 순진한 신입 ‘고딩’ 부모인지 뒤늦게 깨달았다.

1시간여가 지났을까. 드디어 진학지도 선생님이 단상에 오르고 선생님의 연락처가 화면에 뜬 순간 학부모들의 휴대전화 카메라 셔터 소리가 요란하다. 그야말로 아이돌 스타가 따로 없다. 선생님의 등 뒤 스크린에는 각 학교별 입시 결과와 합격 인원 등이 줄줄이 나오고 진학지도 선생님의 입에서 쏟아지는, 그간 외국어처럼 흘려들었던 수시, 정시, 교과, 비교과, 학생부종합전형, 논술, 학교생활기록부 등 입시용어 하나하나가 귀를 타고 들어와 가슴에 돌덩이로 매달린다. 공부는 물론, 동아리 및 특기적성활동, 참여 인원의 10~20%에게만 상이 수여된다는 교내대회참가, 100~200시간의 봉사활동까지. 바야흐로 나라를 구할 어벤져스를 키워야 할 판이다. 고등학교 3년을 어떻게 보내느냐가 아이가 살아갈 인생에서 중요한 첫 관문을 여는 열쇠가 될 것이라는 대목에서 심장이 쿵 내려 앉았다. 엊그제 등교길 교통지도 당번을 했던, 이제 초딩 4학년인 셋째까지 생각하면 장장 9년. 바야흐로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의 준말이란다)’이다. 하지만 이어지는 선생님의 한마디. “아이를 믿고 학교를 믿으면서 함께 가는 3년 동안 우리 아이들은 훌륭히 성장합니다.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선생님의 그 말이 너무나 눈물겹고 고맙다. 설명회를 마치고 나오는 눈앞이 뿌옇다. 며칠째 계속되고 있는 중국발 미세먼지 때문일까, 아님 내 마음발 걱정근심 때문일까.

온갖 걱정과 불안한 마음으로 큰 아이가 다닐 교정을 터벅터벅 걸어 내려오는데 아이들의 함성이 날아와 꽂힌다. 아직 쌀쌀한 날씨임에도 학교 운동장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공 다툼을 하는, 여드름 자국이 미쳐 사라지기도 전의 아이들 모습이 눈부시다. 그 아이들의 모습이 내게 말한다. ‘걱정 말라고, 우리 잘 크고 있다고.’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으려니 문득 처음으로 부모로서 아이를 품에 안았던 순간에 했던 최초의 다짐과 소원이 떠올랐다.

“그저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퇴근 길, 집 앞에 있는 편의점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아저씨, 매일우유 3개 주세요. 1000ml 짜리로요~.”

/진형혜 변호사(서울회·법무법인 지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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