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동안 변호사생활을 하면서 쓴 글이 얼마나 될까. 한 사건에는 한 사람의 인생이 함께 따라 오고, 한 사람의 인생에는 한권의 책으로도 부족한 깊고 진한 이야기들이 들어 있다. 그 이야기들 중 하나의 사건에 관여해서 이를 글과 말로 정리해 상대방의 주장을 탄핵하고 법원을 설득하기를 몇천건은 족히 했던 것 같다.

이렇게 써낸 글을 책으로 낸다면 수백권을 족히 쓸 만한 분량일 것인데도, 아직도 서면을 쓰면 쓸수록 맞춤법과 띄어쓰기에 점점 자신이 없어지는 것은 나만의 일인지 모르겠다. 법률용어는 그나마 자주 쓰는 것이라 틀리는 것이 덜하고 쓰다가 이상하면 찾아보기라도 하는데, 말로는 자주 사용하면서도 글로는 자주 쓰지 않는 한글용어가 헷갈릴 때는 적지 않게 당황한다.

지금 이 원고를 쓰는데도 글자가 틀리거나 띄어쓰기가 잘못된 경우에는 컴퓨터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도 자동적으로 틀린 단어를 바로 잡아놓기도 하고, 단어 밑에 빨간 밑줄을 그어주면서, 오자를 확인하라는 신호나 띄어쓰기를 살펴보라는 신호를 보내준다. 이와 같이 컴퓨터에서 자동으로 틀린 글자나 띄어쓰기를 걸러 내주는 데 의존하다보니, 더 깊이 생각하지 않고 글을 써내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쉬운 예로 김치찌‘개’가 맞는지 김치찌‘게’가 맞는지가 헷갈려서 ‘게’로 쓰면 컴퓨터가 알아서 ‘개’로 틀린 것을 고쳐주기도 하지만, ‘홀애비’가 맞는지 ‘홀아비’가 맞는지는 고쳐주지 않고 , 다만 ‘홀애비’에 빨간 밑줄이 그어져서 다시 찾아보게 한다. 그러나 ‘어떡해’와 ‘어떻게’같이 그 용례가 다른 데도 ‘어떡해’에 빨간 밑줄이 그어질 때는 혼란이 오기도 한다. ‘어떻게’는 부사라 동사를 수식하고, ‘어떡해’는 ‘어떻게 해’가 줄어든 말이다. 예를 들어 ‘지갑을 잃어버렸는데 어떡하지?’와 같이 쓰인다. 컴퓨터의 자동검색 기능만 믿고 쓰다가는 잘못쓰기가 십상인 경우다.

특히 글자와 발음이 잘 구별되지 않아서 잘못 표기하는 경우도 많은데, 불가에서 사람이 죽고 49일 되는 날에 지내는 재를 ‘사십구재’라고 하는데 일반적으로 이를 제사의 일종으로 생각해서 ‘사십구제’라고 쓰기도 하고, ‘아이들 ‘뒤치다꺼리’하기 바쁘다’는 문장도, 왠지 뒤치다‘꺼리’라는 격음을 쓰는 것이 잘못 쓴 것 같아서 ‘뒤치닥거리’로 쓰는 경우가 많다.

또한 사람이 흥분했을 때 입에서 나오는 침을 ‘게가 토하는 거품이라’는 의미에서 ‘게거품’이라고 써야 하나, 이를 ‘개거품’이라고 쓰는 경우도 종종 있다. 아마도 이렇게 쓰는 사람이 개같이 험하게 말한다는 의미를 가졌다고 생각하고 쓰는지 모르겠다. 그뿐만 아니라 발음상 구별이 잘 되지 않아서 틀리게 쓰는 경우도 많은데, ‘뒷처리를 깔끔하게’는 ‘뒤처리를 깔끔하게’가 맞고, ‘얼굴에 붓기가 있다’는 ‘얼굴에 부기가 있다’로 써야 한다. ‘나는 꼼장어 구이도 좋아하고 쭈꾸미볶음도 좋아한다’는 말할 때는 된소리로 하는 것과 달리, 글로 쓸 때는 ‘곰장어’ ‘주꾸미’로 쓰는 것이 맞다. ‘눈에 눈꼽이 끼어 지저분하다고 눈쌀을 찌푸렸다’는 ‘눈곱’이, ‘눈살’로 써야한다. ‘칠흙같이 어두운 밤’도 ‘칠흑같이 어두운 밤’으로 써야 하고, ‘갈갈이 찢어’도 ‘갈가리 찢어’로 써야 한다.

모름지기 서면은 주장과 내용도 중요하지만, 주장하는 글의 맞춤법과 띄어쓰기가 제대로 됐는지를 살펴서 서면의 격조를 떨어뜨리지 않아야 할 일이다.

 

 

/안귀옥 변호사·인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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