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오랜 지기이자 후배인 신기남 변호사(전 국회의원)가 정치인에서 작가로 변신해 소설을 발표한 것이 대단히 놀랍고 반가웠다. 이 소설에서 남주인공 신준선은 UN의 국제유고전범재판소의 재판관으로, 여주인공 권유지는 미술가로 나오는데, 두 사람이 두브로브니크의 호텔에서 우연히 만나 서로의 관심사를 확인하기 위해 크로아티아, 몬테네그로, 보스니아 각 지역을 탐방하며 직·간접적으로 체험하는 현재와 과거의 일들이 이 소설의 줄거리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두브로브니크는 크로아티아 남서쪽 아드리아 해변에 돌출된 도시로 ‘아드리아의 진주’라는 애칭에 걸맞게 아름다운 해변 풍경과 돌로 지어진 성벽과 요새로 유명하다. 이 지역 출신인 로마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의 궁전이 있는 스플리트는 로마시대 유적지로 역사적으로도 가치가 있다. 보스니아의 모스타르에는 오래된 다리 ‘스타리 모스트’를 보려고 수많은 관광객이 몰려들고 있으며 보스니아의 수도 사라예보는 1914년에 오스트리아 왕세자가 암살당함으로써 제1차 세계대전을 유발한 곳인데, 유고 내전 중 가장 피해가 컸던 도시다.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면면을 보면, 먼저 베네치아의 르네상스를 이끈 화가 티치아노 베첼리오의 낭만적인 사랑과 두브로브니크 수도원의 ‘성모승천’ 제단화는 르네상스 시절 크로아티아의 상징이 된다. 1, 2차 세계대전에서 오스트리아와 독일군에 맞서 싸운 유고슬라비아 공화국 드라자 미하일로비치 육군장관은 그의 혁혁한 무공에도 불구하고 1945년 요시프 브로즈 티토의 공산당 정부에 체포돼 처형당하는 비운을 맞는다. 한편 티토는 유고슬라비아 파르티잔의 사령관으로 독일군에 항전하다가 2차 세계대전 이후에 발칸반도의 6개 국가(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마케도니아)를 통합한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의 종신 대통령으로 1980년 사망 시까지 35년간 유고슬라비아의 번영기를 이끌게 된다.

티토가 사망하자 유고슬라비아 연방은 구심점을 잃고 6개 국가로 분리·독립하게 되고, 이를 반대하고 연방을 유지하려는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군과 독립을 주장하는 국가 간에 전쟁이 벌어지는데, 이 전쟁을 주도한 인물이 ‘발칸의 학살자’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세르비아공화국 대통령이다. 이 전쟁은 인종, 종교 간 분쟁으로 비화돼 수많은 민간인들이 학살, 추방되고 도시들이 폐허가 되는 등 이루 말할 수 없이 참혹한 결과를 초래했다. 보스니아 내전에서 2차대전 이후 유럽에서 자행된 가장 잔인한 학살사건을 주도한 보스니아의 스롭스카공화국 라도반 카라지치 대통령은 ‘인종청소’로 불리며 25만명을 사망케 하고 8000명의 이슬람계 주민을 학살한 혐의로 체포돼 유고전범재판소에서 징역 40년의 중형을 선고 받고 복역 중이다. 한편 유고 내전의 최고 책임자인 밀로셰비치 전 세르비아공화국 대통령은 2001년 체포·구금 중 2006년 3월 감옥에서 사망했고, ‘검은 맥베스’로 불린 그의 부인 미라 마르코비치는 러시아에서 망명생활을 하고 있다.

나는 소설을 읽는 내내 로마시대부터 르네상스, 1, 2차 세계대전과 유고 내전에 이르기까지 발칸반도의 역사와 문명, 로맨스 등을 한편의 파노라마처럼 일목요연하게 펼친, 작가의 짜임새 있고 상상력을 더한 스토리 전개에 흠뻑 매료됐다. 작가가 유고전범재판소에서 재판을 받는 피고인들의 주장과 주인공인 재판관의 고뇌와 판결을 객관적으로 묘사하려고 애쓴 점에도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듯이 발칸반도의 역사와 문명, 인간의 존엄성과 전쟁의 잔혹함, 국제사회에서 정의와 질서를 어떻게 수립해야 할 것인가 등에 관심과 열정을 품은 분들께 이 소설을 꼭 읽어보도록 권하고 싶다.

 

 

/오세빈 변호사·서울회(법무법인(유) 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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