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를 깨닫는 경험이 예고 없이 찾아온 첫날의 기억이 있다. 중학교 시절 어느 하루 국사 수업시간이었다.

“목탁 세번 치고 이때 들어왔다.” 선생님께서 한반도에 불교가 전래한 시기가 372년임을 설명하며 이를 쉽게 암기하는 방편을 알려주신 것이다. 스토리텔링 기법 연상작용을 이용한 것이었는데, 신선한 충격이었다. 어느 것을 쉽게 외울 수 있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으레 어렵고 심각하게만 여겼던 공부가 꼭 그런 것만은 아닐 수 있다는, 이전까지 없던 깨달음을 마주했기 때문이다.

이날 이후 4세기 역사적 사실은 오롯이 내 것으로 자리 잡았다. 나아가 공부방법에 대한 인식 변화도 가져올 수 있었다. 372는 선물이었고, 이를 통해 삶을 바라보는 지경(地境)이 조금 더 넓어진 것이다.

이후에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교과서를 집중해서 읽고 읽어도 내용이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아, 결국 책을 놓았다. 며칠 후 그냥 편하게 누워 그 책을 다시 꺼내 마치 소설책처럼 읽는데 어렵게 느껴졌던 부분이 보란 듯이 줄거리처럼 술술 들어왔다. ‘아! 이거구나.’ 372가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 것이다.

이때를 시작으로 372는 공부를 넘어 삶의 궤적에 따라 여러 모습으로 나와 공존하고 있다. 어느 때는 제 주인을 잃고 몇년을 홀로 지내는 듯하더니, 어느 순간 저만치 멀리만 보였는데 불현듯 다시 나를 건드리고 간다.

372가 처음 찾아왔던 그 날의 수업 시간이 여전히 선명하다. 어느 작가의 말처럼 하늘에서 무언가 조용히 춤추듯 내려왔고, 어느 시인의 고백처럼 언제 어떻게 왔는지 모르지만, 주변의 왁자지껄한 소리를 뚫고 느닷없이 내 앞에 서 있었다. 어쩌면 372는 그 이전부터 운명처럼 이미 함께 있었는데, 내가 알아보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최근에도 그가 한번 다녀간 것 같다.

 

/이희관 변호사·서울회(법무법인 자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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