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열매로 더 잘 알려진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우리 국민들이 기부하는 성금을 모금하고 집행하는 기관이다. 필자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서울지회의 배분 업무에 관여하고 있어 한달에 한번 회의에 참석한다.

연말에 담당팀장이 법적인 문제가 생겨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다 하여 내용을 말해보라 하였더니 한 법무법인으로부터 내용증명 우편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요즘 많이 논쟁이 되고 있는 ‘폰트’ 문제였고, 서울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게시한 전자문서가 자신이 대리하고 있는 의뢰인이 가진 ‘폰트’ 저작권을 침해하였으니 손해를 배상하라는 것이었다.

처음 그 내용을 들었을 때 필자의 반응은 “변호사가 너무하네”였다. 물론 ‘폰트’의 저작권성 등 법적인 문제에 대한 사항은 별론으로 하고(지식재산권을 전공으로 하는 동료 교수님께 전화로 문의하였더니 정말 화난 어조로 저작권 위반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셨다), 변호사가 의뢰인을 대리하여 저작권 침해자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은 당연한 변호사의 일이다. 이것 가지고 변호사를 비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국민의 정성어린 성금으로 유지되는 기관이고, 이 돈을 가지고 여러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소중한 성금을 전달한다.

‘폰트’ 저작권자라고 주장하는 사람에게 지급할 배상금은 국민이 어려운 이웃에게 전달하라고 기부해준 성금에서 나갈 수밖에 없다. 얼마 안 되는 돈일 터이나 그 한푼이 아쉬운 어려운 이웃에게 그 돈이 전달되지 않을 것이다.

해당 변호사를 비난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 변호사도 나름의 정당한 논리가 있을 것이고, 필자의 추측으로는 아마 이런 일이 있는지도 모르고 있을 것이다. 담당 사무직원이 일괄하여 발송하는 내용증명 중에 하나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조금만 더 우리 변호사 업계가 여유가 있었더라면, 해당 변호사가 조금 더 여유를 가지고 일을 처리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의뢰인에게 위반자가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이니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보다는 침해중지만을 요청하자고 중재해 볼 수 있지 않았을까? 아니면 아예 의뢰인에게 기부 차원에서 폰트 사용을 허락하도록 설득해 볼 수 있지 않았을까?

변호사로서 업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주위를 둘러보는 여유를 가지는 게 필요할 때도 있다. 늘 긴장의 연속인 업무처리과정에서 조금 여유를 가져보기를 바란다. 다른 것이 보일 수도 있다.

 

 

/손창완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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