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석유 판매’ 사유로 주유소 운영자에게 사업정지 행정처분이 내려졌다. 주유소 운영자는 자신이 사업을 승계하기 전 일이므로 사업정지처분은 부당하다며 취소소송을 제기했다. 석유사업법은 석유판매업자 지위가 승계되면 종전 석유판매업자에 대한 사업정지처분 효과는 새로운 석유판매업자에게 승계되지만, 새로운 석유판매업자가 석유판매업을 승계할 때 그 처분이나 위반 사실을 알지 못했음을 증명하는 경우는 그렇지 않다고 규정한다.

행정소송 1심에서 원고는, 주유소를 승계할 당시 그와 같은 사업정지처분이 내려진 사실과 석유사업법 위반사실을 몰랐으므로 처분이 위법하다고 주장했으나, 원고 패소 판결이 내려졌다. 석유판매업 등록은 원칙적으로 대물적 허가의 성격을 갖고, 또 석유판매업자가 받게 되는 사업정지처분은 사업자 개인의 자격에 대한 제재가 아니라 사업 전부나 일부에 대한 것으로서 대물적 처분의 성격이다. 지위 승계에는 종전 석유판매업자가 가짜석유제품을 판매함으로써 받게 되는 사업정지처분 승계가 포함돼 그 지위를 승계한 자에 대해 사업정지처분을 할 수 있다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원고는 전 사업자가 받은 사업정지처분이나 석유사업법 위반 사실을 승계 당시 알지 못했다고 주장하나, 원고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이를 인정하기에 부족한 점 등을 이유로 사업정지처분은 적법하다고 봤다.

항소심에서는 원고가 승소했다. 항소심은 주유소 측 증인과 처분청 측 증인 각 1명씩 증인신문을 했다. 처분청 측 증인인 담당공무원은 법위반사실을 통지했다고, 주유소 측 증인은 통지를 받은 적이 없다고 증언했다. 재판부는 주유소 측에 더 신빙성이 있다고 보고 원고 승소판결을 내렸다. 예상치 못한 패소에 담당공무원은 매우 당황해했다. 가짜석유를 판 후 사업을 양도하는 것은 제재를 피하고자 흔히 쓰는 수법인데, 항소심 판결이 확정되면 가짜석유 판매업자들에 대한 제재가 어렵게 될 수 있다는 걱정이 앞섰다. 나는 상고심에서 증명책임을 중심으로 논리를 전개했다. 법위반사실을 몰랐다는 증명책임이 석유판매업자에게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항소심에서 주유소 측 증인이 법위반사실을 몰랐다고 증언한 것만으로는 요증 사실이 충분히 증명된 것이 아님을 주장했다. 대법원은 이를 받아들여 “석유사업법이 제재사유 및 처분절차의 승계조항을 둔 취지는 제재적 처분 면탈을 위해 석유판매업자 지위승계가 악용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고, 승계인에게 위와 같은 선의에 대한 증명책임을 지운 취지 역시 마찬가지로 볼 수 있다”며 “사업정지처분 효과는 새로운 석유판매업자에게 승계되는 것이 원칙이고 단서 규정은 새로운 석유판매업자가 그 선의를 증명한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적용될 수 있을 뿐”이라고 판시했다.

법률요건분류설에 따라 자신에게 유리한 사실을 주장하는 자가 그 사실에 대한 증명책임을 지는 것이 원칙이다. 원칙에 의하면 주유소 사업 승계자가 법위반사실을 알았다는 사실에 대해 처분청이 증명책임을 질 것 같으나, 법률은 ‘가짜석유 판매 방지’라는 공익을 위해 주유소 사업 승계자가 법위반 사실을 몰랐다는 주장을 직접 증명하도록 하는 것이다. 상고심에서 승소해 ‘가짜석유 판매 방지’ 공익을 달성할 수 있어서 보람을 느꼈다.

 

 

/황성연 변호사(전 인천서구청 법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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