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은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통로다. 재판의 공간은 다투는 쌍방 의견 중 단 한측의 손만 들어 주기에 냉혹한 현실의 장이다. 재판의 중심에 서있는 변호사들은 재판 중 상대방을 승복시켜야 할 뿐만 아니라 의뢰인도 설득해야 한다. 과연 변호사의 의견을 수용하지 않는 의뢰인을 이끌고 변론할 수밖에 없는 변호사들의 딜레마를 아는 재판관들이 얼마나 될까.

판사는 법정에서 법에 무지한 변호사를 꾸짖기도 한다. 사실 변호사는 의뢰인의 요구에 어쩔 수 없이 독창적인 법리해석을 한 것임에도 이를 눈치채지 못하는 것이다. 법률적으로 무리한 줄 알면서도 무지의 베일에 싸인 의뢰인의 눈과 입술이 되어주는 불쌍한 변호사들. 간혹 동료 변호사로부터 밤 중에 전화를 받을 때면 내일 형사재판을 순조롭게 진행해야 하는데 변호사의 말에 귀를 막고 도무지 듣지 않는 우이독경의 의뢰인 때문에 걱정이라는 말을 들을 때가 있다. 그 뿐인가. 억만금을 청구한 민사소송의 결과를 기다려야 하는 판결선고 전날의 밤은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기도 한다. 형사고소로 입건되고 형사재판정에 입정하게 된 피고인들이 밤하늘의 별을 세며 지새운 시간과 비교할 수 있으랴마는 변호사들의 밤은 평온하지 못한 날이 자주 있다.

또한 최근에 변호사들을 더욱 힘겹게 하는 것이 있다. 세무사, 변리사, 노무사 유사 직역군들이 재판정에 한 발자국씩 내딛어 재판정에서 변호사의 자리를 뺏으려 한다는 것이다. 재판정의 싸움보다 더욱 힘든 것은 재판 때문에 받게 되는 마음의 싸움인데 그 자리를 뺏기면 좀 더 홀가분해진다고 위로를 삼기도 어려운 노릇이다. 더욱 잠 못 이루는 불면의 밤이 연속된다.

스위스의 법률가였던 카를 힐티는 저서 ‘잠 못 이루는 밤을 위하여’를 통해 잠 못 이룸이 재앙이지만 어떤 경우에는 불면의 기쁨을 주기도 한다고 말한다. 자기 반성을 위한, 아무도 방해할 수 없는 조용한 시간을 보내기 위한 불면은 내적 성장을 이루기 위한 보물이라고 한다. 불면의 밤을 두려워 하지 말고 오히려 조용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묵상의 시간으로 삼자고 제안한다.

책을 통해 한 가지를 실천하고 싶다. 오늘 걱정하는 일과 내일에 나타난 결과를 목록으로 만들어 보는 것이다. 아마도 기록된 목록에 나타난 결과를 보면 불필요한 걱정을 했으리라. 어제의 사건을 오늘의 재판정에서 재현한 변호사들은 대부분 내일의 재판을 걱정한다. 그러나 힐티는 오늘 일에 방해받지 않도록 내일 일은 내일 걱정하라고 권유할 듯하다.

 

 

/박상흠 변호사·부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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