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활동하는 공산주의자들의 명단을 가지고 있다.” 1950년, 미국 공화당 상원의원이었던 조지프 매카시의 입에서 나온 ‘메시지’로 인해 미국 사회는 광풍(狂風)에 휩싸였다. 수년간 맹위를 발휘한 이 광풍은 미국의 전설적인 언론인 중 하나인 에드워드 머로우 앞에서 멎게 된다. 다만 머로우는 매카시의 메시지가 거짓인 점을 증명했을 뿐, ‘메신저’인 매카시를 비난하진 않았다. 60여 년 전 미국은 우리와 달랐다.

‘청와대가 적자 국채 발행에 압력을 넣었다’ ‘청와대가 민간인 사찰을 지시했다’는 메시지에 우리 사회는 요동쳤다. 해당 메시지가 사실이라면, 행정부는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치권과 필자가 속한 언론은 메시지보다 메신저에게 주목했다. 이들이 어떤 가정에서 태어나 무슨 대학에 입학하고, 직장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 등이 세상에 공개됐다. 여야도 서로의 입맛에 맞춰 메신저를 ‘조직 부적응자’와 ‘공익제보자’로 공표했다. 메시지 진위 여부는 이미 먼 나라 얘기다.

메시지의 진위 여부를 판단하는 데도 오랜 시일이 걸린다. 매카시의 메시지가 거짓으로 밝혀진 건, 메시지가 등장한 지 약 3년 후의 일이다. 이 때문에 찰리 채플린, 로버트 오펜하이머 등 미국의 수많은 학자들과 유명인들이 공산주의자로 몰려 고초를 겪었다. 신재민 전 사무관과 김태우 수사관의 폭로도 진위 여부를 판단하는 덴 긴 시간이 소요될 가능성이 높다. 해당 메시지를 뒷받침 할 수 있는 증거가 부족할뿐더러 당사자 간의 주장이 크게 엇갈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위 여부는 결국 사정기관인 검찰의 손에 맡겨졌다. 각 개체 간 건설적인 토론은 없었다.

건설적인 토론 없이 상대방을 비방하는 목소리가 크다 보니 연말연초 국회는 몸살을 앓았다. 야당인 자유한국당은 법안 심사 대신 진상조사단 운영에 매진했다. 진상조사단에서 꺼내든 결론은 또 특검법 발의였다. 여당 역시 메신저에 대한 비난을 일삼았는데, 특히 모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신 전 사무관에게 ‘극언’을 쏟아냈다. 언론도 정치권의 자극적인 언사를 그대로 인용했다. 결국 정쟁만이 남았다. 어느새 우린 메시지가 뭔지도 까먹을 만큼, 정쟁에 침잠하고 말았다. 뭐가 옳고 그른지도 아리송할 지경이 됐다.

60여년 전으로 다시 돌아가서 만약 머로우가 매카시의 ‘메시지’가 아닌 매카시를 향해 날 선 발언을 퍼부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머로우 자신도 공산주의자로 몰려 매카시즘이 더욱 횡행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도 다시 메시지에 집중해야 한다. 메신저 대신 메시지 자체를 보고 판단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메신저를 공격하는 방식은 정치에서나 사용하는 방식”이라는 답에 마음 한편이 쓰라린 요즘이다.

 

 

/손기준 MBN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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