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때부터 국사를, 중학교 때부터 세계사를 배웠고, 사법시험 1차를 준비하면서 국사, 문화사(세계사) 공부를 했다. 그래서 남들보다는 국사나 세계사를 좀 더 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최근에 텔레비전 역사 관련 프로그램을 통해 이제까지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던 사실을 알게 됐다.

포츠머스 조약이 러일전쟁 후 체결된 조약이며, 이 조약으로 일본의 대한제국에 대한 지배가 확고해졌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야 드는 의문 하나. ‘청일전쟁 후 강화조약은 일본 시모노세끼(下關)에서 체결됐는데, 러일전쟁 후 체결된 강화조약은 왜 미국 포츠머스에서 체결됐을까?’

일본의 선제공격으로 시작된 러일전쟁에서 일본은 쓰시마 해전에서 결정적 승기를 잡았다. 발틱해에서 출발한 러시아 함대 일부가 영국의 방해로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지 못하고 아프리카 남단을 돌아서 오는 바람에 당시 세계 최강이라는 러시아 함대는 힘 한번 제대로 써 보지 못하고 쓰시마 해전에서 참패했다. 그렇지만 일본은 계속되는 병력손실과 높아지는 대외채무 때문에 당시 우호적이던 미국에게 중재요청을 했고, 당시 미국 대통령인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은 미국 뉴햄프셔 주에 있는 작은 군항인 포츠머스에서 두 나라의 협상을 직접 중재했다.

미국과 일본은 포츠머스 조약 체결 이전인 1905년 7월에 필리핀과 대한제국에 대한 지배를 서로 인정한 이른바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체결했다. 그리고 일본과 영국은 포츠머스 협상 중인 1905년 8월 12일에 인도와 대한제국에 대한 지배를 서로 인정한 ‘제2차 영일동맹’을 체결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1905년 9월 일본은 미국이 중재한 포츠머스 조약에서 대한제국에 대한 패권을 장악했다. 일본은 이러한 영국과 미국의 협조로 한반도에 대한 식민지 지배를 국제적으로 승인 받았다. 그 후 대한제국은 을사늑약과 한일병탄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초등학교 때부터 시작된 국사, 세계사 수업에서 그 누구도 ‘포츠머스’라는 지명에 담긴 의미를 설명해 주지 않았다. 대신에 그 조약 결과만 달달 외워서 시험을 쳤다. 학력고사를 친 지 30년 이상 지났지만, 지금 학교 수업이 그때와 별반 달라진 것 같지 않다. 지금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의 충돌은 포츠머스 조약 때와 다르지 않다. 그때 그랬듯이, 지금 강대국들은 자국의 이익만 추구할 뿐, 우리 이익과 입장을 지지해주지 않는다. 주권과 자주국방, 더 나아가 평화와 통일은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이상이다. 반면에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들의 살벌한 이익 충돌과 미국에 대한 군사적·경제적 의존은 우리에게 닥친 현실이다. 이러한 이상과 현실에서 우리의 살 길을 찾아야 한다. ‘포츠머스’라는 지명에서 비롯된 역사적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한다.

 

 

/김수호 변호사(대구회·법무법인 우리하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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