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한 아이의 아버지가 상담하기 위해 나에게 찾아왔다. 그 아이의 아버지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겨우 이제 초등학생에 불과한 피해 아이가 엄마로부터 지속적으로 심한 언어 폭력과 물리적 폭행을 당해 자신의 삶조차 부인하며 자신은 죽어도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해주었다.

방 안에 웅크리고 앉아 울고 있는 작은 아이가 자신을 쓸모없는 사람이라 여기며 베란다로 뛰어 내리는 장면들이 떠올라 한참을 멍하니 있던 나는 다시 정신을 차리고 적극적으로 상담을 시작했다. 결국 피해 아동은 현재 가해 어머니와 분리되어 법적으로 보호를 받고 있지만 이는 가해 어머니의 언어폭력에 대한 증거가 그나마 명확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특히 아동에 대한 언어폭력의 경우에는 상처가 육안으로 확인되는 물리적 폭력과는 달리 가해 사실에 대한 입증이 매우 어렵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법적 테두리 안에서 피해 아동을 보호하기 매우 어렵다. 부모 중 한 쪽만 가해자가 된 경우에는 다른 한 쪽 부모의 인지로 그나마 피해 아동을 보호할 가능성이 높아지지만, 부모가 모두 가해자가 된 경우 피해 아동은 꼼짝 없이 자신의 존재 자체를 부모 앞에 내어 놓을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누군가의 조력이 없이는 홀로 설수 없는 약한 존재라 하더라도, 그 존재가 나에게 유익이 되고 나의 명성을 높여주기 때문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그 삶은 의미 있는 것임을 나는 계속 되뇌게 되었다.

그렇기에 위험에 노출된 아동들을 실질적으로 보호하기 위해서는 수사기관이나 법원에서 입증의 정도에 너무 민감하기 보다는, 아이를 사랑하고 있다는 가해자의 말에 좀 더 귀 기울이기보다는, 피해 아동의 피폐해진 피해 상태에 더욱 집중해주기를 간절하게 바라게 된다.

가장 믿고 기댈 수 있는 존재로부터 학대당한 어린 아이들이 세상은 믿을 만한 곳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도록 이 사회가 그 아이들의 마음속에 내리는 비에 우산을 펴줄 수 있기를 간절하게 바라게 된다.

‘법적 보호’라는 울타리의 높이를 더욱 낮춰서 이 세상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실제로 학대 당한 많은 아이들이 쉽게 법적 보호의 테두리 안으로 뛰어 들어가 안전하게 신변을 보호받게 되길 간절하게 바라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우리의 바쁜 발걸음이 존재 자체만으로도 삶의 의미가 있는 연약한 아이들에게로 향하게 되길 바란다.

만약 우리가 그렇게까지 될 기회를 가지지 못하더라도 그런 아이들을 향해 고개 돌려 따뜻한 미소를 지어 줄 수 있는 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가길 간절히 바라게 된다.

/김민주 변호사·서울회(로펌이든 공동법률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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