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적 병역거부자 A씨는 지난 2014년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 A씨는 구치소 보안과장이 순시하는 동안 “기동순찰대 해체하고 순시검열 중단하라”고 외치다 교도관들에게 사지를 들려 조사실로 끌려갔다. 교도관들은 A씨를 강제로 조사실 의자에 앉히려고 시도했고, A씨는 몸부림을 치다 교도관 1명을 밀어 함께 넘어졌다. 그는 공무집행방해와 상해죄로 기소됐다. 2015년 4월 공판이 시작된 그의 사건은 항소심서 무죄가 선고됐다.

그런데 사건이 2017년 3월 대법원에 올라간 후 ‘나의 사건검색’엔 ‘상고이유 등 법리검토 개시’ ‘법리·쟁점에 관한 종합적 검토중’ ‘쟁점에 관한 재판부 논의중’이란 진행상황만 입력됐다. 어떤 이유에서 선고가 늦어지는지 A씨는 모른다. 이 사건은 언제 사건이 종결될지 모르는, 대법원에 별처럼 많은 사건들 가운데 하나다.

사실 ‘법대로’라면 A씨 재판은 2017년 끝났어야 한다. 민사소송법은 “판결은 소가 제기된 날부터 5월 이내에 선고한다. 다만 2심과 3심은 기록을 받은 날부터 5개월 내에 선고한다”며 재판에 걸리는 기간을 정해놓고 있다. 소송촉진등에관한특례법도 “판결의 선고는 제1심에서는 공소가 제기된 날부터 6개월 이내에, 2심과 3심에선 기록을 송부받은 날부터 4개월 내에 해야 한다”고 형사소송판결의 기간을 규정해뒀다.

그러나 판례상 이 규정은 강제력이 없는 ‘훈시 규정’이다. 법원이 이 규정을 길가의 돌멩이 취급하는 이유다. 3년 5개월간 선고를 하지 않아 당사자가 정신적 피해를 봤다며 위자료를 청구한 사안에서, 법원은 “판결 선고 기간 규정은 지키지 않아도 무방한 훈시 규정”이라며 국가에 손해배상책임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못박았다. 쉽게 말하면 판결이 아무리 늦어지더라도 불평 말라는 소리다.

선고까지 걸리는 기간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2018년 사법연감에 따르면 형사사건 1심 단독사건 평균 처리 기간은 2013년 100.4일에서 2014년 113.4일, 지난해 125일로 계속 증가했다. 민사 1심 단독 평균 처리 기간도 2013년 158.5일에서 지난해 204.3일로 늘었다. 합의부 사건도 점점 늦어진다. 특히 대법원에 올라와 일단 심리가 개시된 사건은 왜 늦어지는지도 알 수 없다.

소송 당사자들은 “언제 결론이 나느냐”고 변호사에게 꼭 묻는다. 우리네 같은 장삼이사들에게 소송은 일생일대 대사건이라서다. 재판 중엔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는 이들이 부지기수다. 재판이 길어질수록 고통은 눈덩이처럼 커진다.

A씨는 대법원 선고를 아직 기다리고 있다.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사건은 대법원에 올라와서 5년 동안 결론이 나지 않았다며 약과라고 위안해줘야 할까. 공정한 재판은 중요하다. 동시에 지연된 정의(正義)는 정의가 아니라는 금언도 잊지 말아야 한다.

 

 

/백인성 머니투데이 기자·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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