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대전, 서울남부, 인천으로 집중증거조사부(일명, 집중심리재판부)가 확대 설치됐다. 형사재판 집중심리재판부에서 변론 종결해 선고기일을 정했다가, 다시 변론을 재개해 놓고 정기 인사를 이유로 후임재판부에 넘기고 간 형사사건의 변호인으로서 변론재개 당시 주말에 쓴 ‘변호인의견서’에 기초하고 있다. 마음 약한 변호인이 의견서를 써놓고서도 피고인의 불이익 등 여러 가지 사정을 고려해 접수하지 못했다. 변론 재개된 사건을 맡은 새 재판부에서 형식적인 증거조사를 거쳐 선고했는데, 그 사이 실질적인 증거조사는 진행되지 아니하고 주위적공소사실 및 예비적공소사실은 모두 철회되고 새로운 내용으로 공소장이 변경되면서 죄명도 바뀌었다. 그러나 피고인은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 됐다. 항소심법원에서 4개월 정도 구속재판을 받은 피고인은 무죄판결을 받았다. 항소심에서 선고된 무죄판결에 대해 검사는 상고하지 아니해 무죄로 확정됐다.

결과적으로 공판중심주의의 문제가 단순한 이론의 문제가 아니라 한 인간에게 엄청난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사건의 기본적인 사실관계에 약간의 상상력과 느낌을 더하면 할 말은 아주 많으나 이론적인 접근을 해 보고자 한다. 이 사건은 변론종결 당시를 기준으로 보면 무죄를 선고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특별한 사정없이 변론이 재개돼 공판중심주의(집중심리주의)를 위배했고, 결과적으로 피고인에게 불이익을 초래했다.

재판부가 이틀에 걸쳐 온종일 시간을 할애해 집중적으로 증인신문 등 절차를 진행하고 나서도 추가로 증인신문을 하루 더하는 등 증거조사를 했기에 증거조사를 한 재판부가 판결 선고까지 마쳐야 한다는 내용의 의견서를 미리 제출한 적도 있다. 담당 재판장은 최종 변론종결 기일에 휴정을 하면서 배석판사들과 숙의를 거쳐 판결 선고기일을 정했다.

형사재판의 이상적인 모습에 대한 원론적 접근을 하면서 동시에 재판진행의 문제점을 논하는 이유는 ‘형사재판의 신뢰제고’라는데 그 목적이 있다. 이 사건의 경우 적법하고 바람직한 재판을 진행한다면 무죄를 선고하고 정기인사명령에 따라서 이동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재판부의 심증형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아니한 경우, 형사사건은 민사사건과 달라서 유죄입증이 부족한 것으로 판단해 무죄를 선고하면 되는 것이다. 유죄선고를 위해 검사에게 입증기회를 더 주겠다는 재판진행은 적법한 재판진행이 아니라고 본다. 최종적인 결과가 말해 줄 뿐 아니라 소송기록을 자세히 보면 알 수 있는 내용이다.

대법원은 2012년 부산지방법원에서 전국형사법관포럼을 개최한 이래 2017년 청주지방법원포럼까지 매해 진행해 오고 있다. 대법원에서 정한 대주제의 명칭과 소주제 내용은 각 개별 포럼마다 다르다. 그 명칭이나 소주제의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경향각지의 업무에 바쁜 형사담당 판사들이 한 자리에 모여서 논의하고자 노력한 의미는 ‘국민을 위한 형사절차, 신뢰받는 형사재판’에서 찾을 수 있다. 가장 최근에 속하는 2016년 전주지방법원 주최로 열린 형사법관포럼의 소주제였던 ‘공판중심주의실현을 위한 집중증거조사(남성민 부장판사 발표)와 2017년 청주지방법원 주최로 개최된 형사법관포럼 소주제였던 ‘법정중심의 형사재판구현을 위한 증거조사방식모색(구창모 부장판사 발표)에 대한 원론적 내용을 살펴본다.

집중심리는 공판중심주의 실현을 위해 필수적인 전제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집중심리가 이뤄지지 못한다면 공판중심주의는 실체가 없어져 조서재판주의로 변질되는 것이다. 즉, 집중심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면 법정에서 이뤄진 당사자의 변론과 증거조사결과에 대한 법관의 기억이 명확하지 않게 되고 이를 보완하려고 공판조서와 증인신문조서에 의존하게 된다.

집중심리와 관련해 형사소송법에는 “공판기일의 심리는 집중돼야 하고(형사소송법 제 267조의2 제1항), 심리에 2일 이상이 필요한 경우에는 부득이한 사정이 없는 한 매일 계속 개정해야 한다(형사소송법 제267조의 2 제 2항)” 그리고 “재판장은 부득이한 사정으로 매일 계속 개정하지 못하는 경우에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전회의 공판기일로부터 14일 이내로 다음 공판기일을 지정해야 한다”고 명시적으로 구체적인 절차를 정하고 있다. 집중심리주의와 관련된 형사소송법의 심리관련규정을 어기고 재판진행을 한 경우 어떤 효력이 있는지에 대해는 특별한 규정이 없다. 다만, 집중심리를 모범적으로 실현하자고 둔 집중심리재판부에서 집중심리규정을 준수하지 아니해 피고인에게 불이익을 초래하면서 검사에게 이익을 주었다면 이는 재판의 공정성을 해쳤다고 본다.

집중심리를 진행하는 재판부로서 증거조사를 한 후라면 판결을 선고해야 한다. 10여명의 증인을 신문하고 많은 서증에 대한 조사를 거쳤고, 인사이동 이전에 판결 선고하기로 정했었는데도 아무런 이유를 설명하지 아니한 채 변론재개하고 다음 재판부에 미룬다면, 공판중심주의라는 외침은 공허해진다. 법원 정기인사가 다가온다. 법관인사만큼 예측가능성이 있는 인사도 드물다. 예견 가능한 정기인사이동으로 인해 공판중심주의가 흔들리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김영호 변호사(대전회·법무법인 청남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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