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고기사를 쓸 땐 항상 마음이 무겁다. 고인의 가족과 지인을 취재해야 하는 두려움이 가장 큰 이유다. 슬퍼하는 이들에게 상처를 끼칠 지도 걱정되고, 고인의 명예가 훼손될까 조마조마하기도 하다. 고인은 반론을 제기할 수 없기 때문에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것도 더 꼼꼼해야 한다. 고인의 삶을 평가하고 쓰는 일이 망설여지는 이유다.

최근 주말 야근을 한 뒤 자택 화장실에서 숨진 판사의 부고기사를 썼다. 고인은 ‘워킹맘’이었다. 고인의 죽음에는 ‘아이들의 엄마’와 ‘격무에 시달리는 판사’라는 무거운 역할들이 영향을 끼친 듯 보였다. 분명 법조인들의 힘든 삶을 알리는 의미 있는 기사가 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부고기사라는 짐은 나를 망설이게 했다.

나는 고인과 직접 아는 사이가 아니었다. 고인과 인연이 있는 법조인들에게 고인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기사를 쓸 수밖에 없었다. 내가 먼저 묻기도 했고, 법조인들이 먼저 입을 열기도 했다. 그들은 “항상 밝고 책임감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을 놓지 못해 과로사 했다”며 한숨을 쉬었다. 가까운 친구를 잃은 슬픔에 얼굴이 창백해져 말을 잇지 못하던 판사도 있었다.

기사가 출고되는 날 아침까지 안절부절 못했다. 고인이 과로로 인해 숨졌다는 점을 부각했는데 가족들이 상처를 받지 않을까 걱정됐기 때문이다. 다행히 기사를 보고 많은 이들이 좋은 취지로 연락을 줬다. 한 법조인은 “고인의 죽음을 애도할 수 있게 해줘 고맙다”고 했다. 본인 역시 워킹맘인 회사 선배는 “판사들도 이렇게 힘들게 사는지 몰랐다”며 진심으로 슬퍼했다.

문득 내가 죽었을 때 이런 평가받을 수 있을지 두려웠다. 가족과 친구들이 정말 나의 죽음을 슬퍼하고 애도할까. 헛되게 살다 죽는 것이 아닐까. 죽음을 취재하고 나는 꽤 죽음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했다. 그리고 부고기사를 다룬 영화 ‘내가 죽기 전에 가장 듣고 싶은 말’을 봤다.

영화는 은퇴한 광고 에이전시 보스 ‘해리엇(셜리 맥클레인 분)’이 부고 전문기자인 ‘앤(아만다 사이프리드 분)’과 함께 자신의 부고기사를 사망 전에 미리 써놓는 이야기를 다룬다.

해리엇은 생의 마지막 순간에야 자신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뒤돌아보고, 부고기사를 좋게 포장하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한다. 영화 말미 해리엇은 후회를 담은 조언을 남긴다. 나처럼 죽음을, 부고기사를 두려워하는 이들을 위한 가이드라인이 될 것 같아 인용한다.

“좋은 날이 아니라 의미 있는 날을 보내세요. 진실 되고 솔직한 하루를 보내세요. 정직한 하루를요. 그저 좋기 만한 날이라면 나중엔 비참해질 거예요.”

 

 

/이호재 동아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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