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관에게는 두 측면이 있다. 재판관으로서의 법관은 하느님과 같은 권한을 가지고 있고 헌법상 그 지위를 강력하게 보호 받고 있다. 한편 법원조직원으로서의 법관은 인사의 대상이다. 법관들은 모두 1등 인생을 살아왔기 때문에 자존심이 매우 강하다. 그런데 발탁개념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 조직에서는 모두가 1등이 될 수는 없기 때문에 자존심에 상처가 생길 수밖에 없다.

최근에 문제가 되고 있는 법원의 사법행정권 남용(?) 문제의 원인 중 하나로 법관인사문제가 거론된다. 법관의 두 가지 측면이 상호작용한 결과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약 30년 전 필자가 법원행정처에서 심의관으로 근무할 때 일이 기억난다. 당시는 법관 수가 많지 않아 판사실 탁자에 전국의 법관들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법관배치표가 놓여 있었다. 그 배치표에는 일반적인 공통기재사항(연수원 기수, 나이 등)외에 추가 기재사항이 있은 법관들이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행정처, 유학 등이었다.

이러한 기재가 없는 법관의 경우 기재란이 공란이므로 백판으로, 기재가 있는 법관의 경우 흑판이라고 불렸는데 행정처 근무나 유학 등이 좋은 것이므로(그 자체가 꼭 좋은 것이라기보다는 소위 우수그룹으로 보이는 법관들이 흑판으로 많이 되는 것이 정확한 이유일 것이다) 백판들은 자신이 요즘 용어로 비유하면 ‘흙수저’라고 느끼고 흑판은 ‘금수저’로 생각하게 됐다.

그래서 그때도 흑판이 못된 판사들 사이에서 불만이 많아 법관조직의 균열이 걱정된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당시 필자 나름대로 흑판 백판 문제 등 법원 인사문제의 해법(?)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는데 법관인사 3분설이 그 요체이다.

행정처나 유학이 그 자체의 좋고 나쁨을 떠나 누가 거기에 가는지가 중요하므로, 기수별로 법관을 초임기준 3분하여 보직인사를 함으로써 누가 인사에서 소외됐는지 알 수 없게 하면서 조직을 이끌어 가야 한다는 것이다. 즉 모든 등장인물을 영화의 주인공으로 만들 수 없으면(불가능하다) 차라리 주인공이 없는 영화를 만들자는 것이다. 그러면 영화가 재미있겠느냐, 되겠냐는 비판이 예상되지만 법관조직의 특수성을 감안할 때 이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당시에는 고법부장승진제 폐지라는 생각까지는 못했으므로 그때까지는 3분설 인사를 철저히 하여 모든 법관들이 최선을 다해 일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 무렵 윗분에게 보고서를 제출할 기회에 법관인사 3분설을 제시했는데, 그분이 상당히 관심을 보이시면서 한번 시도했다가 다른 분이 오시면서 다시 종전으로 돌아가는 것을 보고 실망한 기억이 있다. 만약 3분설이 계속됐다면 오늘날 법원의 모습은 어떨까하는 부질없는 생각을 해본다.

 

 

/이동명 변호사·서울회(법무법인 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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