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함의 세계에 들어온 걸 환영합니다.” 이는 갓 만년필에 입문한 사람에게 들려주는 메시지의 하나이다.

만년필은 서명에 어울리는 격도 있고 다른 필기구가 갖지 못하는 나름의 장점도 있다. 그러나 의외로 손이 많이 가는 탓에 만년필을 들인 후에도 안착하지 못하고 종종 이 세계를 떠난다.

만년필은 그 특성상 사용이 번거롭다. 붓글씨를 위해 붓 외에 먹과 벼루도 챙겨야 하듯이 만년필도 별도의 잉크가 필요하다. 펜촉은 미세한 충격에도 쉽게 망가진다. 또한, 일상의 상태를 위해 꽤 신경을 써야 한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금세 잉크가 굳어져 다시 사용하려면 여간 애를 먹는 게 아니다.

글 쓰는 시간보다 정작 그 전후 준비와 관리에 몇 배의 품을 들여야만 하니, 사용의 편리성이나 시간의 효율성 측면에서만 보면 아주 낙제점인 것이다.

그런데도 만년필은 다른 필기구와 구별되는 특성이 있다. 다양한 펜촉과 잉크가 만나 각양의 서체를 만들어내고, 펜촉의 굵기와 형태에 따라 달라지는 사각거림의 감흥도 있다. 한편, 주인의 필체에 맞게 길든 펜촉은 시간이 가져다주는 보상이기도 하다.

이러한 필사의 매력 외에 만년필이 내게 주는 또 다른 의미가 있다. 잉크를 덜어내고 다시 채우고 굳어진 펜촉을 다시 씻고, 여전히 번거로운 과정이지만, 이에 몰두하다 보면 이 불편함의 끝에서 어느덧 마음의 평정에 다다르게 된다.

처음부터 평정이 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초기에는 번거로움에서 오는 불편함이 너무 커서 이러려고 만년필을 들였나 고민이 많았다. 그러다가 하루하루 쌓이며 순서의 요령도 생기고 과정도 몸에 익숙해지면서 무념 속 자신과의 거리가 가까워지게 된 것이다.

“품을 들이는 번거로움은 피할 수 없지만, 그로 인한 불편함은 마음먹기에 따라 달라진다.” 이것이 만년필을 대하는 나의 만트라(mantra)이다.

 

/이희관 변호사·서울회(법무법인 자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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