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어 다녀요.”

한 판사가 담담하게 말했다. 숨어 다니는 이유는? 출·퇴근시간과 점심시간에 법원 중앙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별도의 조그만 엘리베이터만 고집하는 이유는? 불편한 시선을 감내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한다. 필자와 말하기도 꺼려했다. 대법원장이 그를 ‘사법농단 의혹’ 징계 청구 대상으로 삼은 이후부터다. 지난 6월 대법원장이 그를 징계 대상인 법관 13명 중 1명으로 넘기면서, 그는 ‘엘리트 판사’에서 ‘적폐 판사’가 됐다.

숨어 다니는 생활에서 끝난 게 아니었다. 일부 국회의원이 징계 청구 명단을 공개하면서 오히려 그는 가족들을 위로해야하는 ‘웃픈’ 상황이 됐다. 그동안 대개 판사들은 관행상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기면 옷을 벗었다. 징계 대상이 되면 ‘법원을 나가라’는 뜻으로 이해했다고 한다. 이런 관행 속에서 그가 숨어 다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 모른다.

숨어 다닐 정도로 법원에서 ‘낙인’이 됐지만 사법 농단 13명 판사의 구체적인 혐의는 언론에 자세히 보도된 적이 없었다. 검찰 수사가 진행되면서 이슈나 문제가 된 법관은 오히려 13명에 속하지 않기도 했다. 하지만 김명수 대법원장이 검찰 수사 협조와 함께 무더기 징계 청구 신호탄을 날리면서 그들은 ‘사법농단 13명’ 꼬리표를 달았다. 법관징계위원회가 열릴 때마다 징계위 명단이나 징계 과정은 깜깜이였지만, 유독 징계 명단만 선명해진 것이다.

그렇다보니 아쉬운 점이 존재한다. 사실관계(죄)가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13명 대상(사람)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집중되고, 징계와 ‘탄핵’의 목소리가 먼저 커졌다. 쉽지 않고 곤혹스러운 말이지만 “죄는 미워해도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지난 11월 탄핵 결의 찬성 결과가 나온 전국법관대표 회의에서도 언론 보도보다 “판사답게 판단하자”는 의견이 있었지만, 죄보다는 사람을 미워하는 듯한 발언으로 전 법원행정처에 대한 반감을 드러낸 의견들에 묻히기 일쑤였다.

잘못이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재판 독립을 침해한 행위 등에 당연히 책임을 물어야한다. 사법부 신뢰도 회복돼야 한다. 검찰은 내년까지 ‘사법농단 의혹’ 수사를 이어가겠다며 의지를 보이고 있다. 검찰 수사 결과를 통해 재판에서 진실을 밝혀 책임을 물을 수도 있을 것이고, 법관징계위가 ‘추가 징계’를 할 수도 있다. 징계가 충분치 않다면 탄핵 카드도 남아있을 것이다.

증오만으로는 발전이 없다. 최근 법관들 사이에서조차 객관적 행위 규명보다 ‘탄핵’ 목소리가 더 커진 모양새는 안타깝다. 6개월 만에 법관징계위 결과가 나왔다. 숨어 다니던 판사의 혐의도 처음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심의 결과 법관징계위는 그에게 징계 처분을 내리지 않기로 했다. 13명 꼬리표가 쉽게 떼어지진 않겠지만, (13명 중) 그를 포함한 5명은 무혐의나 불문(不問, 사유는 인정되지만, 징계 할 정도는 아니다)처분을 받았다.

 

 

/한송원 TV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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