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는 많이 줄었지만, 그래도 ‘국민성’이나 ‘민족성’을 이야기하는 분들이 가끔 있다. 그런데 그분들 주장의 대부분은 미국인이나 일본인에 대해서는 우호적이지만, 한국인에 대해서는 비관적이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국민성이나 민족성이란 게 존재하는 건가?”라는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국민성’의 사전적 의미는 ‘한 국가 성원에게 공통되는 인성 및 행동양식’이다. 그런데 빈번하게 인적·물적 국제교류가 이루어지고, 여러 다양한 가치가 복잡하게 부딪치는 현대 사회에서 한 국가 성원에게 공통되는 인성 및 행동양식이라는 게 있을까. 만약 미국인이 우리나라에서 이 사회의 가치관과 행동양식에 맞추어서 잘 산다면, 그 사람은 한국인의 국민성을 가지는 걸까.

사실 ‘국민’이라는 개념은 근대국가 성립 이후에 정립됐다는 것이 일반적인 설명이다. 그 이전에는 왕이나 제후가 다스리는 지역에서 살면서 그 권력에 복종하는 피지배층이 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근대 이전 유럽이나 중동에는 국경선도 모호해서 역학구조에 따라서 그 지역의 지배주체가 수시로 달라지기도 했다.

덥고 습한 지역에 사는 사람의 기질과 행동양식은 춥고 건조한 지역에 사는 사람의 그것과 다르다. 추운 지방에서는 겨울을 대비해서 훈제나 염장 등으로 음식을 장기간 보관해야 한다. 반면에 더운 지방에서는 3, 4모작이 가능하고 과일이 잘 자라기 때문에 남은 음식을 굳이 보관하지 않는다(오히려 음식을 잘못 보관하면 그 음식이 상해서 탈이 날 가능성이 높다).

그 지역의 지배 체제나 지배 이념, 당시 주변 국제 정세도 구성원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 고려시대에는 중국에서 여러 국가가 나타났다가 사라졌고 불교를 숭상했다. 조선시대에는 세계 최강국이던 원나라가 망한 후 명나라·청나라가 중국을 연이어 제패했고, 유교 이념이 지배했다. 따라서 고려시대 사람과 조선시대 사람의 가치와 행동양식은 다를 수밖에 없다.

‘국민성’이라는 개념은 존재하기 어렵거나, 한 마디로 규정하기 어렵다. 그 지역과 그 시대에 적응하기 위한, 최적화된 기질과 행동양식이 있을 뿐이라고 하면, 너무 단정적일까.

구성원들의 이해관계가 충돌되는 현재 사회에서는 가장 필요한 덕목은 ‘준법 의식’이다. 그렇다고 준법 의식은 단순히 있는 법을 잘 지키자는 소극적 의미에 그쳐서는 안 된다. 그 시대정신과 구성원의 다수 의견을 담은 법이 제대로 만들어지고, 적법 절차와 합목적성에 따라서 그 법이 집행되어야 하며, 분쟁은 법적 안정성과 구체적 타당성의 조화 속에서 해결되어야 한다.

물론 우리나라 사람들이 준법 의식이 부족하다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20~30년 전을 돌이켜 보면, 그 때 어떻게 그런 일이 실제 있었을까 싶다. 법과 시스템이 정비되고 준법 의식이 높아진 지금은 그때와 큰 차이가 있음을 실감한다. 이제는 모호한 ‘국민성’을 탓하기보다는 사회 구성원의 준법 의식을 높이는 방안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가 아닐까.

 

 

/김수호 변호사·대구회(법무법인 우리하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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