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만 책을 읽는 것은 아니지만 가을은 유난히 책 읽기에 좋은 계절이라서 예로부터 등화가친(燈火可親)의 계절이라고 했다. 허나 올해 초에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17년 국민독서 실태조사’를 보면 너무나 부끄럽고 참담한 생각이 든다. 지난 1년간 일반 도서를 한권이라도 읽은 사람의 비율은 성인 59.9%, 학생 91.7%라 한다. 이는 1994년 처음 독서율을 조사한 이래 최저치란다. 단적으로, 성인 10명 중 4명은 작년에 책을 한권도 읽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편 매일 책을 읽은 사람의 비율이 영국은 32.6%, 아일랜드는 31%, 독일은 26.9%, 프랑스는 23%고 OECD 국가 평균은 20.2%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고작 8.4%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우리 국민의 독서수준이 참으로 부끄럽고, 책을 읽지 않는 국가는 미래가 없다는 말도 있는데 이대로 간다면 나라의 장래가 심히 걱정스럽다.

그래서인지 정부에서는 올해를 책의 해로 선포했다. 문체부는 서울국제도서전 등 각종 행사를 치르고 생애주기별 독서프로그램, 풀뿌리 독서 동아리 활동, 인문학 강의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 범국민적인 독서장려 운동을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다. 그런데 이미 10여년 전에 정부가 독서문화진흥법까지 만들어서 시행해 왔지만 독서관련 예산과 행정체계, 독서 교육, 독자 확대 연구실적은 불비한 상태거나 미미하기만 했다. 그러나 기왕에 책의 해로 선포하기까지 한 올해는 보다 실속 있는 푸짐한 성과가 있기를 기대해 본다.

위 조사에서 책읽기를 방해하는 요인으로는 성인과 학생 모두 “일 또는 공부 때문에 시간이 없다”가 성인 32.2%, 학생 29.1%로 가장 높았다. 한편 성인은 “휴대전화 이용, 인터넷, 게임”이 원인이라는 비율이 19.6%, “다른 여가활동으로 시간이 없어서”라는 비율이 15.7%였다. 학생은 21.1%가 “책 읽기가 싫고 습관이 들지 않아서” 18.5%가 “휴대전화 이용, 인터넷, 게임” 때문이라고 답했다.

이 결과는 일과 공부 때문에 시간이 없어서 책을 읽지 않는다는 응답은 한갓 핑계임을 반증하는 꼴이다. 그만큼 독서의 중요성과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절실하지 못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우리 문단의 거목 소설가 조정래는 “책을 읽고 또 읽어라. 학교에서 좋은 스승을 만나는 것은 한계가 있다. 그 부족을 책을 통해서 채워야 한다. 책이 가장 좋은 스승이기 때문이다.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일수록 남보다 값진 삶을 누릴 수 있고 세상사를 통달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

작가 이지성은 진정한 변화와 성장을 원한다면 독서가 필수라고 강조한다. 독서광으로 자타가 공인하는 작가 김병완은 삶의 질(質)과 격(格)은 천차만별인데 자신의 삶을 업그레이드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독서뿐이라고 했다. 단 한번뿐인 인생을 보다 값지게 살기 위해서는 제때에 좋은 씨앗을 뿌리고 땀 흘려 정성껏 가꾸는 노력이 필요한데 그 좋은 씨앗이란 독서를 통해서 얻을 수 있다는 말이다.

우리가 책을 읽는 목적은 여러 가지다. 교양, 정보, 전문지식을 얻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간접 경험, 자기성찰, 상상력이 늘어나는 데 있다. 책 속에는 지식과 정보뿐이 아니라 타인의 소중한 경험, 상상으로 만들어진 멋진 이야기, 인생을 돌아보고 생각하게 하는 철학적 성찰도 담겨있다.

또한 독서는 풍부한 어휘력을 얻게 하고 이를 통한 문장력과 언어구사 능력을 높여준다. 독서는 깊은 사고력과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방식을 갖게 한다.

그래서 법조인일수록 재조나 재야를 막론하고 다양한 장르의 독서가 필수라고 생각한다. 좁은 안목으로 전공 분야만의 독서가 아니라 연관분야까지 폭넓게 읽어야 한다. 복잡다단한 사회현상과 미묘한 인간심리를 파악하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법지식보다도 풍부한 간접 경험을 통해서 얻은 소중한 자료 등을 활용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개권유익(開卷有益). 책을 펼치면 이로움이 있다는 말이다. 정부가 나서서 독서를 권장하기 전에 독서가 몸에 밴 자연스러운 문화로 정착돼야 한다. 출판계를 비롯하여 지자체들이 경쟁하듯 동네서점과 골목책방, 북카페 등을 개설하여 독서 인구를 늘리고 독서환경을 조성하고 있는 것은 퍽이나 바람직하고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조선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안중근 의사가 남겼던 마지막 유묵의 문구는 “일일부독서 구중생형극(一日不讀書 口中生荊棘)”이다.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 안에 가시가 돋는다는 뜻이다. 독서는 읽거나 말거나의 선택사항이 아니라 필수항목이다. 독서는 인생항로를 비추는 등대요, 방향을 잡아주는 나침반이다. 우리가 신체의 건강을 위해서는 매일 영양가 있는 음식을 먹고 적당한 운동을 해야 하듯이 정신건강을 위해서는 매일 책을 읽어 필요한 마음의 영양분을 섭취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부디, 올해만이라도 국민 모두가 책을 좀 많이 읽어서 풍성한 마음의 양식을 거두어 들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임태유 변호사(광주회·법무법인 새천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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