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20살이 된 큰 아들에게 ‘신검’ 통지서가 왔다. 그 아들이 병무청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뭘 찾아보더니, 곧 신검을 받으러 가야 한단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그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신검’ 즉 ‘병역판정검사’가 아들에게 닥쳤다.

아들로부터 신검 이야기를 듣고서, 30년 전에 내가 받은 신검과 그 이후의 군 복무가 떠올랐다. 대학에 들어가는 바람에 20살에 받아야 하는 신검은 연기되었지만, 더 이상 신검을 미룰 수 없던 대학 4학년에 어린 동생(?)들과 같이 신검을 받아서 현역 판정을 받았다. 솔직히 졸업 후 현역병 입대가 겁이 나서 1987년 가을 육군학사장교시험에 응시했다. 1차 면접 및 체력장 통과 후 신원조회를 거쳐서 최종 합격되었다. 그렇지만 입영통지서가 오지 않아서 남들 다 받는다는 입영통지서를 받지 못한 채, 1988년 2월 29일 아침 일찍 머리카락 깎고, 집안 어른들에게 인사한 후 집을 떠나서 영천3사관학교로 갔다. 21주간의 훈련기간을 마치고 육군 소위로 임관한 후 3년하고도 일주일 현역 근무 끝에 전역했다. 신검과 군 복무는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사건 중 하나였다(그 해 88올림픽이 열렸지만, 나에게는 1988년은 또 다른 의미로 잊을 수 없는 해다). 아직도 몇년에 한번쯤 다시 입영통지서를 받는 악몽(?)을 꾼다.

내가 군 입대한 후 30년이 지나는 동안 대한민국은 적대국이라던 소련, 중국과 수교했고, 남한과 북한이 서로 체제를 인정했다. 그러다가 북한의 핵개발 및 대륙간탄도미사일 실험 등으로 인해 북한과 미국 사이에 험한 말들이 오고 가면서 전쟁 불안에 떨다가 최근에 북미 정상회담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3차례 남북한 정상회담을 가졌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남과 북은 여전히 휴전선을 앞에 놓고 대치중이다. 우리 내부에서 이념 갈등도 심각하다. 최근에 대법원에서 선고된 양심적 병역 거부자에 대한 판결을 두고 찬반이 뜨겁다.

우리나라는 징병제를 채택하고 있는데, 그 이유 중 하나가 ‘정전 중인 남북한 대치 상황’인 점은 부인할 수 없다. 그렇지만 내가 입대한 지 30년이 지났지만 별로 바뀐 것 없다. 아들을 둔 대한민국 대부분 부모들처럼, 내 아들이 신검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이 눈앞에 절실하게 다가온다.

인류 역사에서 ‘전쟁 없는 세상, 군대 없는 나라’는 실현된 적이 없다. 그렇다고 이 꿈을 포기할 수 없다. 수많은 전쟁을 겪었지만, 인류가 이만큼이라도 버티고 있는 건, 많은 사람들이 평화와 공존을 외쳤기 때문이다. 이제는 전쟁과 평화, 징병제와 병역의 의무 등에 관하여, 감정이 아닌 이성과 합리성을 바탕으로 토론하고 결정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다시 30년이 지나서 내 아들의 아들이 20살이 되었을 때 지금과 다르게 바뀐 게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김수호 변호사·대구회(법무법인 우리하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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