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협, 미쓰비시중공업에 대한 손해배상청구소송 대법원 판결 관련 기자회견

“후속 조치, 우리나라 정부에 달렸다 … 국민이 정당한 권리 행사토록 돕길”

 

법정 투쟁 19년, 강제로 일본에 끌려간지 74년 만에 일제강제동원 피해자들이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승소 판결을 얻어냈다. 이제 정부와 국회가 나설 차례다.

대한변호사협회(협회장 김현)는 지난달 29일 서초동 변호사회관 5층 정의실에서 ‘일제강제동원 피해자들의 미쓰비시중공업에 대한 손해배상청구소송 대법원 판결에 대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기자회견은 근로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일)나고야 미쓰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소송 지원회, (일)한국원폭피해자들을 돕는 시민모임과 함께 했다.

김현 협회장 인사말을 대독한 김학자 변협 인권이사는 “대법원 판단이 내려진 만큼 이제 우리 정부와 국회가 하루 빨리 피해자 권리 구제 방안을 수립해야 한다”면서 “일본 정부도 이제 그릇된 국가주의 사고에서 벗어나 인간의 존엄성과 보편적 인권 중심 사고를 재정립해 피해자들에 대한 사죄와 배상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대법원은 같은 날 일본 미쓰비시중공업에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손해배상 청구권이 소멸하지 않았다”면서 “근로정신대·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미쓰비시중공업은 판결에 따라 근로정신대 피해자에게는 1인당 1억~1억5000만원, 강제징용 피해자에게는 1인당 8000만원을 위자료로 지급해야 한다. 미쓰비시중공업은 해당 판결이 일본 확정판결에 반한다며 일본 정부와 논의해 대응하겠다는 입장이다.

기자회견에서는 ‘뒤늦은 정의’에 울분이 터져나오기도 했다. 근로정신대 사건은 2012년, 강제징용 사건은 2000년 처음 제소됐다. 강제징용 원고 다섯명은 모두 고인이 된 상황이다.

소송대리를 맡은 이상갑 변호사
소송대리를 맡은 이상갑 변호사

근로정신대 사건 소송대리를 맡은 이상갑 변호사는 “재판이 늦어졌던 이유가 대법원이 상고법원 설치를 두고 외교부와 짝짜꿍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안 지 얼마 되지 않았다”면서 “오늘 대법원 판결을 한 마디로 하면 만시지탄”이라고 회의감을 토로했다.

이어 “근본적으로 보면 70년이 넘은 사건인데 판결이 나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이 걸렸다”면서 “사법부 책임으로 재판이 늦어진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아무런 입장 표명을 하지 않아 유감”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한일청구권협정에 대한 법리적 해석에는 긍정적 평가가 나왔다. 대법원은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인해 징용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권이 소멸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이상갑 변호사는 “이번 판결이 한일청구권협정에 대한 사법적법리적 쟁점을 검토하고 최종적으로 정당한 해석을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전했다.

반면 일본 최고재판소는 소멸시효 완성을 이유로 강제징용 사건에 대한 청구를 기각했다. 다만 “청구권을 실체적으로 소멸시키는 것까지를 의미하는 게 아니라 그 청구권을 소송으로 행사하는 권능을 잃게 될 뿐”이라고 판시했다. 이에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지난달 30일 중의원 본회의에서 “강제징용된 사람에 대한 배상청구권은 한일청구권협정에 의해 완전히,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면서 “단호하게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답변한 바 있다.

이상갑 변호사는 “일본 최고재판소에서 한 판결을 봐도 원고들이 피고에게 손해배상 청구를 할 권리가 없다거나 미쓰비시중공업이 손해배상 책임이 없다고 판결하는 게 아니다”라면서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에 의해 소송 절차에 따라 받을 길이 막혀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일본 변호사 109명을 포함한 116명도지난 10월 강제징용 피해자가 신일본제철주금을 상대로 승소한 대법원 판결에 대해 “개인의 실체적인 배상청구권은 소멸되지 않았기 때문에 신일본제철주금이 자발적으로 배상금을 지급하는 것은 법적으로 가능하다”라면서 “한일청구권협정에 의해 개인 청구권은 소멸되지 않는다”고 지난달 5일 공동성명【본보 제715호 12면 참조】을 발표하기도 했다.

관련 단체들은 문제가 완전히 해결될 때까지 끝까지 투쟁을 이어가겠다는 입장이다. 이치바 준코 한국원폭피해자들을 돕는 시민모임 회장은 “일본 국민도 국회 앞에서 시위를 계속하고 있고 미쓰비시중공업 본사 앞에서도 배상을 촉구하는 행동도 할 계획”이라면서 “한일이 모두 힘을 합쳐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다짐을 전했다.

다카하시 마코토 나고야 미쓰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소송 지원회 대표도 “하루 빨리 해결해야 했던 사건인데 74년이나 이를 방치해 온 일본 정부와 미쓰비시중공업을 용서할 수 없다”면서 “절대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니 일이 해결될 때까지 싸울 것”이라고 밝혔다.

발언하는 김성주 할머니
발언하는 김성주 할머니

대법원에서 승소했어도 피해자들은 여전히 고통 속에 있다. 근로정신대 피해자 김성주 할머니는 “일본에 다녀왔다는 이유로 남편에게 많이 맞았다”면서 “평생 뒷골목으로 다녔고 딸들도 얼굴을 못 들고 다닌다고 해서 부끄럽고 미안하다”고 털어놨다.

사회를 맡은 이국언 근로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 상임대표는 “부끄러워해야 할 사람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9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숨죽여 살아오게 원인을 제공한 미쓰비시중공업과 일본 정부, 이를 외면해온 우리나라 사회가 모두 부끄럽다”고 심경을 밝혔다.

후속 조치가 언제 이뤄질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강제징용 피해자 고 박창환 할아버지의 아들 박재훈씨는 “부친께서 승소 판결을 보지 못 하고 돌아가셔서 기쁘기도 하지만 슬프기도 하다”면서 “우리나라 정부가 미쓰비시중공업에 배상을 함께 촉구함으로써 억울하게 돌아가신 분들 한을 풀어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규열 한국원폭피해자협회 협회장은 “해방은 됐지만 피해자들은 지금도 전쟁을 하는 실정”이라면서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기자회견이 끝난 후에는 후속 조치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다. 이희자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공동대표 역시 “판결의 기쁨은 잠깐이고 후속 조치 문제가 남았다”면서 “대한민국 안에 있는 많은 피해자를 어떻게 구제할 것인가”라며 의문을 던졌다.

이상갑 변호사는 “피고가 재판 결과에 따라 손해배상을 이행해야 하는데 일본 정부와 기업, 우리나라 정부가 판결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하고 있다”면서 “피해자들이 다 돌아가시고 남은 과제를 다시 한번 20년 동안 맨손 맨발로 쫓아다니며 해결해서는 안 된다”고 답변했다.

이어 “중국 피해자들이 일본에서 패소 판결 받았으나 기업들하고 협의해서 배상 받은 사례가 다수 있다”면서 “국민이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지 못 하는 상황에 적극 나서도록 정부에 요구해달라”고 강조했다.

질문에 답변하는 최봉태 변호사
질문에 답변하는 최봉태 변호사

미쓰비시중공업과도 협상을 지속하되, 제3국에서 강제집행을 하는 방안 등도 모색할 예정이다. 강제징용 사건을 대리한 최봉태 변호사(변협 일제피해자인권특별위원회 위원장)는 “그간 가집행을 할 수 있어도 하지 않은 이유는 집단적으로 화해할 사건이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 대법원으로 향하는 일제피해자들
저작권자 © 법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