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2년 전 일이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김수천 부장판사가 정운호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로부터 사건 청탁 대가로 고급외제차량 등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부장판사가 구속된 건 10년만이었다. 긴급 법원장 회의가 소집됐다. 회의 직후 고영한 법원행정처장은 양승태 대법원 시절 법원 내부전산망인 ‘코트넷’에 ‘법관윤리 제고를 위한 제도 개선방안’을 공지했다.

공지문엔 ‘법관윤리심의위원회 설치’가 실천 계획으로 명시됐다. 다음해인 2017년 각급 법원 법관들의 자발적 회의기구인 법관윤리심의위원회를 만들어, 법관들의 대인관계 등 사생활 영역에 대한 행동기준을 마련하겠다는 것이었다. 판사들이 어떻게 행동하면 될지 일종의 ‘가이드’ 또는 ‘매뉴얼’을 만들겠다는 취지였다. 당시 법관들은 대부분 이러한 방안에 납득했다. 판사들이 스스로 모여 정하는 가이드라인이라면 찬성한다는 게 법관들의 주된 반응이었다.

이후 법관윤리심의위원회는 잊혀졌다. 활동이 미미하다는 뜻이 아니라 아예 설치조차 되지 않았다. 기자가 위원회 운용내역을 질의하자 대법원은 “법관윤리심의위원회와 사법정책기획위원회는 2017년부터 설치해 운영할 계획이었으나, 설치되지 않았다”고 했다. 이유를 묻자 대법원에서도 도무지 알 수 없다고 했다. 판사가 거액의 청탁을 받았는 데도 어떤 이유에서인지 이를 개선할 ‘셀프 개혁’ 기구조차 설치하지 않은 게 법원의 현실이다.

2년이 지나 김명수 대법원장은 지난 9월 취임 1주년을 앞두고 양승태 사법부 시절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의 진앙으로 꼽히는 법원행정처를 폐지하겠다는 방침을 공식화했다. 그동안 법원행정처는 ‘개혁 대상 1호’로 지목돼 왔다. 대법원장 직속에서 정책과 예산, 인사 등 사법부 행정업무를 총괄하는 관료 조직이라 사실상 사법부를 대법원장의 의중대로 따르게 만드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 왔다는 점에서다.

김 대법원장은 법원행정처를 폐지하는 대신 사법행정회의(가칭)와 법원사무처, 대법원 사무국 등을 신설해 기존 업무를 분리하고, 대법원과 법원사무처 공간을 분리하며, 법원사무처에는 상근법관을 두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관료화된 중앙집권적인 행정처 중심의 사법행정구조를 근본적으로 개편하겠다는 취지다. 2019년엔 행정처에서 상근하는 판사 1/3 정도가 줄어든다.

그런데 법조계에선 대법원 법원행정처에 있는 현재 심의관들과 상근판사들을 사법정책연구원과 사법연수원 등 상근판사가 많은 다른 법원조직으로 보내 별도의 ‘미니 행정처’를 만들려 한다는 지적이 벌써부터 나온다. ‘연구위원’ 등으로 이름만 바뀐 판사들이 기존과 똑같은 방식으로 사법행정업무를 수행할 우려가 있다는 점에서다. 과연 대법원장의 약속 취지에 맞게 개혁 조치가 이루어질지 걱정이다. 설치조차 되지 못한 법관윤리심의위원회가 문득 떠오른다.

 

/백인성 머니투데이 기자·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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